김영삼 대통령이 승인한 "대양해군은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
1996년 청와대 ‘결정적 장면’…“대단히 야심 찬 계획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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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월 청와대. 안병태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국형 구축함 KDX-I부터 KDX-III까지의 건조계획과 잠수함·대형상륙함·해군항공기 확보계획을 함정 척수와 항공기 대수까지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김 대통령은 "대단히 야심 찬 계획이구만. 해야지. 합시다, 안 총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한국 해군의 미래를 바꾼 이른바 '대양해군' 구상의 핵심 장면?이다.
■ "연안 방어만으로는 안 된다"…1995년 '대양해군 준비' 선언
해군사관학교 17기 출신인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이 자신의 군 생활과 대양해군 건설 과정을 담은 회고록 『바다로 세계로 대양해군』을 펴냈다.
안 전 총장은 1995년 4월부터 1997년 4월까지 제20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그가 취임 당시 제시한 핵심 화두는 '대양해군 준비'?였다.
당시 한국 해군의 기본 임무는 한반도 주변 해역을 지키는 연안 방어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안 전 총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구축함과 잠수함, 대형상륙함과 항공전력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원양작전 능력을 갖춘 해군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봤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안 전 총장이 그린 청사진은 단순한 전력 증강계획에 머물지 않았다. 한국 해군이 한반도 주변 바다를 넘어 국가의 경제활동과 해상교통로, 해외 국민과 국가이익까지 보호할 수 있는 해군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국가전략적 구상이었다.
■ 1996년 청와대 '결정적 장면'…"대단히 야심 찬 계획이구만"
이번 회고록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대양해군 전력건설계획의 대통령 보고 비화다.
안 전 총장은 1996년 4월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국형 구축함 KDX-I부터 KDX-III까지의 건조계획을 비롯해 대형상륙함, 잠수함, 해군항공기 확보계획을 보고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단순히 '몇 척을 확보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함정 척수와 항공기 대수까지 구체적으로 보고했다는 것이 회고록의 핵심 내용이다.
김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단히 야심 찬 계획이구만. 해야지. 합시다, 안 총장."
당시 대통령의 이 같은 결심은 이후 한국 해군의 장기적인 전력건설에 중요한 정책적 동력을 제공했다.
KDX-I에서 시작해 KDX-II, KDX-III로 이어지는 한국형 구축함 전력은 이후 대한민국 해군의 핵심 수상전투함 전력으로 발전했다.
잠수함 역시 장보고급에서 손원일급, 도산안창호급으로 발전하면서 한국 해군의 수중작전 능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 30년 뒤 현실이 된 '대양해군'…기동함대사령부 출범
안병태 전 총장의 구상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30년이 지난 현재 상당 부분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해군은 2025년 2월 기동함대사령부를 공식 출범시켰다.
기동함대는 이지스 구축함 등을 중심으로 원해에서 국가의 핵심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해양에서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해군의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과정에서 안 전 총장의 1995년 '대양해군 준비' 구상이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5년 취임한 해군참모총장이 제시한 '준비'가 30년 뒤 실제 해군의 조직과 전력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회고록은 단순한 한 전직 참모총장의 자서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대한민국 해군이 왜 기동함대를 필요로 하는지, 그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 안병태가 정의한 '대양해군'…"한 달간 독자 작전 가능한 해군"
안 전 총장은 회고록에서 대양해군을 단순히 '큰 해군'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한 대양해군의 개념은 명확하다.
"국민의 해양 활동 지원 및 국가 이익 수호를 위해 외부 지원 없이 약 한 달간 대양에서 독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해군"?이다.
핵심은 함정의 숫자가 아니다.
독자적인 원양작전 능력이다.
안 전 총장은 서문에서도 대양해군은 단순히 해군의 규모나 전력을 키우는 개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가가 세계 속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 갖춰야 할 해군의 모습이며, 대한민국이 더 이상 보호만 받는 나라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나라로 성장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적인 경제·무역 국가이자 조선·방산 강국인 한국은 에너지와 원자재, 수출입 물동량 상당 부분을 바다에 의존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해양안보의 범위 역시 한반도 주변을 넘어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대양해군은 더 이상 특정 시기의 해군력 증강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전략과 직결된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 "책 낼 만큼 모범이 됐나"…출간 망설였던 안병태
회고록을 쓰고도 안 전 총장이 출간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2020년 초고를 작성했지만 출간을 망설였다.
아내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아내는 안 전 총장에게 "당신이 후배들에게 책을 낼 만큼 모범이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 전 총장은 이후 원고를 다시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러다 결국 대양해군 건설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알리고, 후배들이 대양해군 건설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작은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간을 결심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대양해군'이라는 군사전략만 담겨 있지 않다.
유년 시절부터 해군 장교 생활, 참모총장 재임 중의 고민과 결정, 전역 이후의 삶까지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이 함께 담겼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대양해군 건설 과정에 할애됐다.
한 개인의 회고록인 동시에 한국 해군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기록한 역사 자료라는 평가가 가능한 이유다.
■ "대양해군은 해군만의 길이 아니다"…대한민국의 국가전략으로
양용모 전 해군참모총장은 안 전 총장의 회고록에 대해 의미 있는 평가를 내놓았다.
"대양해군은 해군이 갈 길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이어 이번 회고록이 대한민국이 해양강국, 대양해군으로 나아가는 길에 나침반이자 길동무이며,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는 엄중한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이 말은 이번 회고록의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95년 안병태 총장이 제시했던 '대양해군 준비'는 당시만 해도 야심 찬 구상이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 해군은 KDX 구축함과 이지스함, 잠수함, 대형수송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동함대사령부까지 출범시켰다.
'대양해군'이라는 개념이 실제 전력과 조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 "해야지. 합시다, 안 총장"…30년 전 결심이 던지는 질문
"바다로 세계로 대양해군"이 오늘날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대한민국은 어떤 해군을 필요로 하는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해군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국익이 미치는 바다까지 지킬 수 있는 해군인가.
안병태 전 총장은 30년 전 후자를 선택했다.
당시 그의 구상은 '대단히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동함대사령부가 출범하고 한국 해군이 원양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현실을 보면, 당시의 계획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는 이제 '바다를 지키는 해군'에서 '바다를 통해 국가의 이익과 책임을 지키는 해군'으로 확장?되고 있다.
안병태 전 총장의 회고록은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보여준다.
1996년 청와대에서 오갔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한마디.
"해야지. 합시다, 안 총장."
한국 해군의 오늘을 이해하려면, 30년 전 그 결심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양해군'은 한 해군참모총장의 구호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 가기 위해 선택한 국가전략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