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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업계가 처한 현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지난해 국내 시멘트 출하량은 3810만t으로 전년보다 12.8% 감소했습니다. 1991년 이후 34년 만의 최저 수준입니다. 4000만t 선마저 무너졌습니다. 올해는 상황이 더 녹록지 않습니다. 업계에서는 연간 출하량이 3600만t 안팎까지 줄어들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멘트업계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시멘트는 대표적인 내수형 산업입니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도로와 철도가 놓여야 수요가 생깁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고 착공이 줄어들면 시멘트업체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전방산업의 침체가 가장 기초적인 건설 소재까지 그대로 내려온 셈입니다.
그렇다고 비용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료와 유연탄, 물류비 부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탄소 감축과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설비투자도 미룰 수 없습니다. 올해 업계의 설비투자 계획은 전년보다 줄었지만 상당 부분은 유지·보수와 환경·안전, 에너지 효율 개선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매출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공장을 안전하게 돌리고 다음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투자는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근 시멘트업계가 순환자원과 저탄소 기술에 힘을 싣는 움직임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폐플라스틱 등 순환자원을 연료로 활용하면 수입 유연탄 사용량과 탄소배출을 동시에 줄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원가를 낮추고 탄소 규제에 대응하면서 산업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선택에 가깝습니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있습니다. 순환자원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우려에 대해서는 보다 투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어떤 원료를 사용하고 무엇이 배출되는지, 안전성은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줘야 합니다. 친환경 전환은 산업의 필요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신뢰와 동의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수요 감소는 한두 기업의 경영전략으로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건설경기 정상화와 적정한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탄소저감 설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기업에 체질 개선을 요구하면서 변화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모두 기업 스스로 감당하라고 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은 아닙니다.
시멘트는 화려한 산업이 아닙니다. 완성된 아파트에서는 보이지 않고, 새로 놓인 도로에서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집과 매일 건너는 다리, 달리는 도로의 출발점에는 어김없이 시멘트가 있습니다. 다른 산업보다 먼저 건설경기의 한기를 맞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34년 만의 최저라는 숫자 앞에서 업계의 위기를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불황 속에서도 공장을 지키고, 환경 투자를 이어가며 다음 먹거리를 찾는 기업들이 다시 달릴 수 있도록 산업 전체가 길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꺼진 소성로에 다시 불이 붙고, 멈춰 있던 생산라인이 다시 힘차게 움직이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한 축을 묵묵히 떠받쳐온 시멘트업계의 다음 50년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