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 중 한 장면. /세종솔로이스츠
이안 보스트리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60세가 넘어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느끼는 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몸을 악기로 하는 성악가가 60세가 넘어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좋은 연주를 들려주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래하는 인문학자로 불리는 그의 학구적인 태도와 자기 관리는 62세의 나이에도 전성기와 다름없는 음색과 더 깊어진 음악 세계를 보여줬다. 바로 이번에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한 말러 가곡 공연 무대에서다.
세종솔로이스츠가 매년 여름 선보이는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은 올해로 9주년을 맞았다.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을 뜻하는 힉엣눙크(HIC et NUNC)는 전통적인 클래식과 동시대 창작곡들을 넘나들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공연들을 이어왔다. 올해도 8월 25일부터 9월 3일까지 다양한 주제와 44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10개의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는데 이날 공연은 페스티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순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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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 중 한 장면. /세종솔로이스츠
지난달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안 보스트리지가 연주한 말러의 연가곡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일반적으로 피아노나 관현악 반주로 많이 연주되는데 세종솔로이스츠는 체임버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 버전을 사용해 보다 섬세하고 밀도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특히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영국 작곡가 콜린 매튜스가 이안 보스트리지를 위해 편곡한 것으로 그의 음색에 최적화된 사운드라고 생각됐다.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현악의 선율은 예민하기 그지없는 보스트리지의 가창을 부드럽게 감싸안으며 서정성을 더했다.
이날 연주된 말러의 연가곡은 대중들에게 바리톤이나 메조소프라노의 연주로 익숙했던 곡들이다. 이안 보스트리지는 특유의 섬세한 음성과 지적인 해석으로 고도화된 1인 음악극을 보여주었다. 그는 노래하기보다 시가 담은 내용과 감정을 그려내는데 집중했다. 때로는 격렬하게 토로하고, 비명에 가까운 고음을 외치고, 폐부에서 끄집어낸 듯한 저음을 내뱉고, 북치기 소년의 죽음 앞에 미동도 없이 한참을 멈춰있는 등 다채로운 감정의 진폭의 연주를 선보였다.
2부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에서도 바리톤의 묵직함과는 또 다른, 말러 특유의 청춘의 불안함과 유약하고도 민감한 감성을 잘 살려냈다. 한없이 차갑고 투명한 그의 목소리는 부러지기 쉬운 빙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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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세종솔로이스츠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말러' 중 한 장면. /세종솔로이스츠
이안 보스트리지가 노래하는 말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만난다면 파묻힐 것 같고, 피아노만으로는 그 치밀하고 예리한 감수성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세종솔로이스츠와의 이번 만남은 가장 이상적인 조합 중 하나라고 하겠다. 이번 연주를 위해 지휘자 없는 앙상블인 세종솔로이스츠에 지휘자 윤한결이 합류해 보다 안정적이고 정교하도록 이끌었다.
보스트리지의 말러 연가곡과 어울려 세종솔로이츠는 말러가 현악 합주로 편곡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95번 '세리오소'와 슈만의 현악사중주 1번 작품번호 41번의 3악장을 연주했다. 말러가 존경했던 독일 낭만주의의 유산과 연결 지은 이번 프로그램은 보스트리지의 연주와의 사이에 좋은 보완점이 됐다. 물 흐르는 듯 유기적인 현악에 비해, 관악파트는 때때로 투박한 호흡이 느껴졌지만, 전반적으로 연주자들의 깊은 교감과 예술적 진정성이 깊이 녹아든 음색은 객석에 강한 여운을 남겼다.
지금 이 시대에 가치 있는 음악을 바로 이곳에서 선보이겠다는 세종솔로이스츠의 진지한 도전은 올해도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