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기 가치, 직원 없는 케이맨 회사로…판사 "기이한 약정"
자산은 묶였지만 운항은 계속…베트남은 판결 승인 거부
|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고등법원 상사법원의 푸시핀더 사이니 판사는 지난 15일 항공기 리스업체 FW에비에이션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 같은 자산 동결 명령을 내렸다.
런던 투자회사 피츠월터캐피털의 계열사인 FW에비에이션 측은 비엣젯을 '못 갚는' 채무자가 아니라 '안 갚는' 채무자로 규정했고, 사이니 판사는 이 설명이 증거로 충분히 뒷받침된다고 판단했다. 사이니 판사는 "자산 동결로 발생할 수 있다고 비엣젯이 주장하는 차질에는 동정할 여지가 거의 없다"며 "그 차질은 진짜 지급 불능 때문이 아니라 판결 채무 이행을 고의로 거부하고 집행을 집요하게 막아온 비엣젯 자신 탓"이라고 밝혔다.
자산 동결 한도는 최대 2억5160만 달러(약 3330억원)다. 동결 대상에는 비엣젯이 전량 리스로 운용 중인 항공기 약 112대와 에어버스 A330-900·A321neo 등 아직 인도받지 않은 주문 항공기가 포함됐다. 롤스로이스 제품을 포함한 주문 엔진과 기내 장비, 인도 전 선급금, 정비적립금, 리스 보증금, 대리점이 거둔 항공권 판매대금도 함께 묶였다.
현재 비엣젯은 인천·부산에서 하노이·호찌민·다낭·나트랑·푸꾸옥 등을 잇는 한국~베트남 직항 노선 11개를 운항하고 있다. 다만 이번 동결 명령은 압류가 아니어서 비엣젯은 통상적인 영업 범위 안에서 운항을 이어갈 수 있다. 대신 베트남 국외에 있는 항공기 주문분이나 정비적립금, 리스 보증금 등을 처분·변경하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법원이 특히 문제 삼은 대목은 약 300대에 달하는 비엣젯의 항공기 주문분이다. 사이니 판사는 비엣젯이 '인도 전 선급금 참여 계약'을 통해 2024년 말 기준 주문분 가치의 거의 전부를 관계사인 케이맨제도 법인 안젤리카홀딩에 넘긴 것으로 판단했다.
사무실과 직원조차 없어 보이는 이 회사에 대해 사이니 판사는 "전형적인 케이맨 페이퍼컴퍼니의 외형을 모두 갖췄다"고 지적했으며, 비엣젯이 대가로 받기로 한 채권 역시 "완전히 허울뿐"이라고 봤다. 또한 해당 거래들을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기 어려운 "기이한 약정"이라고 지칭했다. 반면 비엣젯 측은 법정에서 오래전부터 활용해 온 통상적인 금융·재금융 거래라고 주장했다.
FW에비에이션은 두 번째 시도 만에 이번 동결 명령을 이끌어냈다. 앞서 같은 법원은 지난해 7월 첫 동결 신청 당시에는 자산 처분 위험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기각한 바 있다. 그러나 사이니 판사는 이후 드러난 항공기 주문분 관련 증거로 사정이 달라졌다고 봤다. 비엣젯이 관련 계약을 1년 넘게 공개하지 않았고,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도 의문이 있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이번 분쟁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비엣젯이 리스해 운용하던 에어버스 여객기 4대에서 비롯됐다. 영국 BBC가 인용한 법원 기록에 따르면 당시 비엣젯이 연체한 리스료는 약 800만 달러(약 106억원)였으며, 2021년 10월 리스 계약 해지가 통보됐다. 기존 대주단의 권리를 넘겨받은 피츠월터 측은 항공기 회수와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으나, 비엣젯은 계약 해지 통보 이후에도 리스료를 내지 않은 채 약 1년간 해당 항공기들을 계속 운항했다.
영국 법정에서 비엣젯은 연이어 패소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2024년 7월 리스 계약 해지가 유효하다고 판결한 데 이어, 지난해 4월에는 비엣젯에 약 1억8000만 달러(약 2388억 원) 지급 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6월 항소마저 기각된 이후 추가 판결과 이자, 소송비용 등이 누적되면서 전체 채무는 약 2억5000만 달러(약 3318억원)로 불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비엣젯이 지금까지 지급한 금액은 지난해 5월 납부한 200만 달러(약 27억원)가 전부다.
FW에비에이션은 승소하고도 배상금을 거의 받아내지 못한 채 집행 과정에서 난항을 겪어왔다. FW에비에이션이 회수한 항공기 4대의 등록지를 영국해협의 건지섬으로 옮기자 비엣젯의 한 주주가 소송을 제기했고, 하노이 법원은 베트남 등록 말소를 불허하며 항공기의 국외 반출을 막았다. 베트남 법원은 영국 법원 판결의 승인도 거부했다.
여기에 올해 5월 싱가포르에서 비엣젯 항공기 9대에 대한 압류 명령이 내려지자, 비엣젯은 즉시 싱가포르 노선 운항을 축소했다. 비엣젯 측은 저당 계약상 필요한 조치였다고 주장했으나, 사이니 판사는 이를 "명백히 집행을 좌절시키려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