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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뽑듯 다져온 ‘현장경영’ 철학…고려아연 최윤범의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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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강훈 기자

승인 : 2026. 10.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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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변호사에서 전략광물 공급망 핵심 인물로
페루 납치 위기 딛고 호주선 운송 트럭 고안
코로나19 당시 직원 걱정에 자필편지 보낸 진심
청바지 입고 타운홀 미팅…소통행보도 눈길
KakaoTalk_20261027_175315367 수정
"이럴 때일수록 현장으로 내려가 어려움을 이겨낼 방안을 함께 강구하며 고민하고 싶지만, 그것 역시 누가 될까 조심스러운 마음입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의 공포가 산업 현장을 덮쳤을 때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위기일수록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하지만 감염병이 확산하던 당시만큼은 달랐다. 직원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도 자칫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췄다. 대신 자필 서명을 담은 편지로 마음을 전했다.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과 직원들을 먼저 배려하려는 마음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해 연말에도 편지는 이어졌다. 최 회장은 임직원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메시지와 함께 온산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쌀과 삼겹살 등을 위문품으로 전달했다. 막연한 격려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의 일상에 온기를 보태려는 시도였다. 평소에도 생산 목표만큼이나 안전을 강조하며 직원들에게 무사히 일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건강하게 시간을 보내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련소의 생산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다.

직원들을 향한 세심함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물론 신년사와 창립기념사도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자의 메시지를 조직에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구성원들과 소통하려는 것이다. 거대한 제련 설비와 글로벌 사업장을 움직이는 경영자에게 편지 한 통은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불안에 휩싸인 순간, 구성원들이 경영진의 진심을 확인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수학·영문학에 음악까지…뉴욕 변호사에서 광산 경영자로

1975년 3월 17일 태어난 최 회장은 고려아연 창업주 고(故) 최기호 회장의 손자이자 지난해 별세한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어머니는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다. 미국 애머스트대학교에서 수학과 영문학을 복수 전공하고 음악까지 부전공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미국 대형 로펌 크라벳, 스웨인 앤 무어에서 기업 인수합병(M&A) 업무를 맡았다. 2007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입사하면서 법률 전문가에서 현장 경영자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첫 해외 경영 무대는 남미였다. 2010년 페루 현지법인 ICM 파차파키의 자원개발 사업을 총괄하는 사장에 오르며 광산 개발 현장에 뛰어들었다. 광산 인근 주민들에게 납치당할 뻔한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현지 직원들과 테니스를 치며 어울렸다.

본사 전략기획 담당 부사장을 거쳐 2014년에는 호주 자회사 선메탈(SMC) 사장에 올랐다. 오랜 적자로 어려움을 겪던 곳이었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주변의 만류에도 최 회장이 스스로 호주행을 택했다.

기술 개발과 공정 개선에 집중한 선메탈은 흑자로 돌아섰고, 2018년에는 당시 사상 최대인 70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 과정에서 시멘트와 정광을 함께 운송하는 트럭을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 제련 공정뿐 아니라 물류 효율까지 살피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배운 '잡초 뽑기'…확신 속에서도 스스로 의심

현장의 작은 문제를 개선하려는 태도는 부친 최창걸 명예회장의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최 명예회장은 거창한 혁신보다 일상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경영을 잡초 뽑기에 비유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하루 열심히 잡초를 뽑았다고 다음 날 쉬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꾸준히 문제를 해결했다면 대대적인 개혁이나 구조조정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호주 제련소의 전력비용 문제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제련사업은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만큼 에너지 비용이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 회장은 비용 절감 방안을 고민했고, 2018년 선메탈 인근에 125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섰다. 제련소 운영비를 낮추려던 시도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확장된 셈이다.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시한다. 신년사와 창립기념사를 매년 직접 작성하고 임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도 자필 서명을 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의 언어로 전달하려는 모습이다.

2023년 7월에는 창사 이래 첫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직원들 앞에 선 최 회장은 약 2시간 동안 회사의 미래뿐 아니라 일과와 스트레스 해소법, 독서 습관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강조한 것은 '자기 의심(Self-doubt)'이었다.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되 그 결정이 옳은지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2024년 시작된 영풍·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최 회장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분쟁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되돌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주주총회가 끝나면 가장 먼저 울산 사업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지난해 6월 신입사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직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회사를 움직이는 데 자신보다 구성원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페루·호주 지나 다시 미국으로…끝나지 않은 도전

사람과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은 사업 확장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최 회장은 2019년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2020년 부회장을 거쳐 2022년 12월 회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15년 만이다.

이후 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을 세 축으로 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에 속도를 냈다. 호주에서 시작한 태양광 사업은 신재생에너지로, 금속 회수 기술은 배터리 소재와 자원순환 사업으로 연결됐다.

최근에는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을 투입해 아연과 연, 동뿐 아니라 안티모니와 게르마늄 등 전략광물을 생산할 계획이다. 2029년 시험가동을 거쳐 2030년 상업생산을 목표로 한다.

사업 확장과 함께 실적도 성장했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 약 12조4450억원, 영업이익 1조3330억원으로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과제도 남아 있다. 미국 제련소 건설에 따른 자금 부담과 신사업 수익성 확보가 필요하고,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도 진행형이다. 지난 22일 약 8370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 1심에서 최 회장 등 이사진이 승소했지만 상대 측은 항소 방침을 밝혔다.

뉴욕의 M&A 변호사에서 페루 광산과 호주 제련소를 거쳐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 경쟁의 한복판에 서기까지 최 회장은 여러 무대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부친에게 배운 '매일 잡초를 뽑는 경영'은 중요한 기준이 됐다.

직원들에게는 안전과 소통을 강조하고 자신의 판단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는 최 회장. 사람과 현장을 가까이하며 쌓아온 경험이 미국의 대규모 투자에서도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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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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