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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칼럼]시저의 아내가 받은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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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0. 08.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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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논설위원

‘송와잡설’에 나오는 얘기다. 연산군 때 홍문관 교리 등을 지낸 정붕(鄭鵬)은 대쪽같은 선비였다. 실력자 유자광(柳子光)이 외가 친척인데도 의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자광에게 ‘문안의 예’까지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럴 때에는 끈으로 심부름하는 여종의 팔을 단단히 묶고, 묶은 자리에 표시를 해서 보냈다. 돌아온 후에 풀어줬다. 묶인 팔이 아파서 여종이 유자광의 집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고 빨리 갔다가 빨리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언젠가는, 정붕의 집에 끼니거리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아내가 고민을 하다가 유자광에게 사람을 보내 하소연했다. 유자광은 선뜻 말했다. “친척은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어찌 정붕을 괄시하겠는가.” 그러면서 쌀과 장을 두둑하게 정붕의 집으로 보내줬다.

정붕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왔더니, ‘옥 같은 쌀밥’이 있었다. 아내가 사실대로 털어놨다. 정붕은 밥상을 밀치며 말했다. “아침에 비지죽 차리는 것을 보고 양식이 떨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도 내가 조치를 하지 않았으니 나의 잘못이지 아내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정붕은 친구들에게 연락, 쌀을 꾸어서 유자광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선조 임금 때 ‘청백리’로 뽑힌 윤석보(尹碩輔)는 풍기군수 발령을 받고 처자를 풍덕(豊德)에 있는 초가집에서 머물도록 했다. 아내 박씨는 ‘사또 남편’을 두고도 춥고 배고파서 살기 어려웠다. 별 수 없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비단옷을 팔아 약간의 땅을 샀다. 오늘날과 같은 투기가 아니라, 곡식이라도 좀 심어서 호구지책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윤석보가 소식을 전해듣더니 발끈했다.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땅을 돌려주라는 편지였다. “옛 사람들은 한 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넓히지 않음으로써 임금을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 내가 대부(大夫)의 반열에서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집안 사람으로 하여금 땅을 사도록 하는 게 옳겠는가. 백성과의 매매로 나의 허물을 무겁게 하지 말아라.”

옛 선비들은 이랬다. 공직자는 그 아내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양에도 ‘시저의 아내는 혐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Caesar’s wife must be above suspicion)‘는 격언이 있다. 시저는 물론이고, 시저의 아내도 혐의나 의혹을 받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공직자의 아내는 하찮은 소문이라도 두려워할 정도로 맑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편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다. 손가락질과 쑥덕공론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후보자 아내에 대한 말이 제법 나왔다. 어떤 후보자의 아내는 관용차를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그 개인적인 운행거리가 자그마치 3만km에 달했다. 결혼기념일에는 ‘서민 남편’이 주는 190만 원짜리 루이뷔통 가방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금품 수수 의혹 때문에 ‘밤새도록 펑펑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고도 했다.

또 어떤 후보자는 “아내가 ‘노후 대비용’으로 쪽방촌 집을 산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놔야 했다. 그 집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다. 어떤 후보자의 아내는 분양권을 매매하고, 위장취업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출근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연봉을 받았다고 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다. 후보자는 ‘제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치국’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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