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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칼럼] “친정 엄마만한 선생님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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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2. 01. 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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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8…나의 오늘을 있게한 어머니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
학생 때는 공부한다고, 직장 다닐 때는 일하느라 늘 바쁘다며 친정부모님을 잘 챙겨드리지 못했다. 챙겨드리기는커녕 같이 보내는 시간도 별로 없었다. 딸이 대학을 가면 다른 어머니들처럼 함께 시장도 가고 미장원도 가려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늘 바깥 일을 안하고 집에 있는 딸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내가 급할 때는 언제나 SOS를 치게 된다. 애기 봐주는 분이 갑자기 못 오실 때에는 출근을 못 할까봐 발을 동동 구르며 어머니를 찾고, 주말에 일하느라 애들 밥을 챙겨주지 못할 때에도 여지없이 어머니를 찾는다. 애들을 병원에 데려가고, 한약을 지어 먹이고, 늘 같은 반찬에 물린 애들에게 별식을 해다 달라고 부탁하는 곳도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주 “너는 도대체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몇 년이냐”고 하시면서도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만사 제쳐 놓고 달려오신다.

그런데 대부분의 딸들이 그렇듯 나도 어머니를 만나면 잘 다툰다. 다툰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나의 불평을 받아 주신다. 사람들과 비교적 잘 지내는 편인 내가 왜 유달리 어머니와 마찰이 있는 걸까?

한참동안 못 보다가 겨우 시간을 맞춰 함께 식사를 하기위해 만나면 얼굴을 보자마자 건네는 첫 말씀은 “너 요새 살이 왜 그렇게 많이 쪘니?”라고 하시거나, 내가 체중이 좀 줄었다 싶으면, “나이드니 살 빠지면 못쓰겠구나. 너 주름이 보이는 것 같다”라고 하신다. 일이 많아 좀 무리했다 싶으면 “얼굴이 그게 뭐냐. 일전에 길에서 네 여고 친구 만났는데 얼굴이 뽀얀 것이 꼭 햇 됫박 같이 빛이 나던데······.”라고 하신다. 

그럼 “무슨 소리야, 요새 사람들 만나면 나보고 다 예뻐졌다던데.”라고 대꾸하면서 속으로 ‘흥! 친정엄마가 뭐 그래! 칭찬 좀 해주면 안되나!’라고 푸념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이를 테면 어디서 칭찬을 받았다든가, 상을 받았다든가, 은근히 칭찬을 기대하면서 자랑을 하면 엄마는 잘했다는 말보다는 “너, 늘 겸손해야 하는 거 알지? 밖에 나가서 절대 그러면 안된다”며 찬물을 끼얹곤 한다. ‘마흔이 넘은 딸이 엄마 칭찬 한마디 듣고 싶어서 그러는데 좋은 소리 한마디 안해주시나’ 싶어 섭섭해 하면서 “칭찬 먼저 하고 그런 말 하면 좀 어떠냐”고 툴툴 댄다.

몇 해 전, 큰 딸이 한창 사춘기이고 작은 딸이 사춘기를 막 시작하려 할 때였다. 아이들이 내게 “엄마는 거기가 왜 그렇게 생겼어? 어휴”라든가, “내가 엄마 닮아서 여기가 못생겼구나”라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곤 애들 아빠가 “나는 엄마한테 감히 그런 얘기 할 엄두도 못 내는데, 너희들 대단하구나”부러워했다. 마치 딸들이 신문고를 두드리기나 한 것처럼 후련해 하는 모습을 보고 나와 어머니가 겪는 마찰의 원인을 알아냈다. 어머니는 늘 내게 객관적이고, 남들은 하기 어려운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늘 나를 채근하는 채찍이었다. 지금부터 10여년 전, 로펌의 변호사 시절, 소송 준비를 하기 위해 사무실 회의실 대신 친정에서 사흘간 연락을 두절하고 방대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과박스 크기로 4개 분량의 서류를 어떤 내용이 있는지 목록 정리를 하고, 봐야 할 자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렸다. 점심 먹으라고 하시는 엄마가 “얼마나 했니?”라고 물으시기에 “기록을 파악하고 계획 세우느라고 아직 자료를 읽지는 못했다”고 했더니, “기록이 4 박스나 되는데 언제 다 보려고 늑장을 부리느냐고 야단하셨다.” ‘에궁!’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엄마는 내 공부에 구구절절 신경쓰진 않으셨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잔소리였다. 마치 ‘숙제도 안하고 놀았니?’하는 소리 같았다. 

점심 후, 그간 밤샘 작업으로 쌓인 피로에 식곤증까지 겹쳐 잠깐 책상 옆 침대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언제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실지 몰라 책상에서 꾸벅 졸았다. 깜박 잠들었다 깨면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엄마 눈치가 보인다’는 생각에 우습기도 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이렇게 어릴 때나 나이 들어서나 나를 바로 서 있게 하는 버팀목이라는 걸 그 순간 절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운전면허 필기시험도 어마어마하게 공부를 많이 하는 어머니, 한약사 시험을 보기 위해 몇 달 동안 강의를 들으며 대학 노트에 나는 읽지도 못할 한자를 빼곡하게 필기하는 어머니, 십년 이상 주역 공부에 뜸, 침 공부에 열심인 어머니, 딸 사법시험 붙으라고 시험 기간 내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당상관 쌍학흉배를 수놓으며, 침침해지는 눈 때문에 대낮에도 전등에 스탠드까지 켜야 했던 어머니, 주차를 할 때에도 삐뚤게 세우면 다시 반듯하게 세우라며 다시 고쳐 주차하게 만드는 어머니, 손녀들 이유식 국물을 만들 때도 하루는 생선, 다음날은 고기, 그 다음날은 멸치다시로 철저히 정성을 다하던 어머니. 늘 한결같이 노력하고, 큰 일에나 작은 일에나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 지금 내게 뭔가 잘하는 게 있고, 장점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건 간에 모두 40십여년 동안 곁에서 보아 온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라는 걸, 나는 장담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엄마만한 선생님은 없다’고. 그런데 나는 말한다. ‘우리엄마 만한 선생님은 이 세상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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