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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만 前 재무부 장관 파란만장 일대기 담은 ‘부모님 전상서’

이용만 前 재무부 장관 파란만장 일대기 담은 ‘부모님 전상서’

기사승인 2020. 10. 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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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고향 부모님 묘소 찾아 하고팠던 이야기 책에 담아
부모님 전상서
1933년 지금은 북한땅인 강원 북부 평강군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저녁 때 올게요, 어머니” 하고 부모 곁을 떠난 지 어언 70년이 됐다. 그는 “일상적으로 드린 인사말이었는데, 그 평범한 약속 한마디가 이렇게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의 이야기다. 이 전 장관은 한국 전쟁 당시 헤어져야 했던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과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부모님 전상서(Ode to My Parents)’를 펴냈다.

70년 전, 17세 단신으로 월남한 실향 소년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전쟁 때 인민군의 총에 맞아 뒹굴던 중 불타다 남은 나무 그루터기에 걸렸을 때, 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하늘을 보면서 머리에 번쩍 떠오른 것은 안타까워하며 자신을 내려다보던 아버지와 눈물을 줄줄 흘리던 어머니였다.

대학 등록금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남들보다 3년 늦었지만, 낮에는 틈틈이 일하고 밤에는 다른 직원 대신 숙직해 주며 학업을 마쳤다.

고학으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0년대 초 내각 기획통제관실과 대통령 비서실에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정리 및 보고하는 일들을 맡았다. 이후 재무부 장관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까지 오르면서 대한민국을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 함께 하게 된다.

“홀로 남쪽으로 온 후 지금까지 살면서 매 순간 ‘통일이 되면 부모님 묘소를 찾아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영전에 엎드려 기도드리며, “그래도 승만이 서울 가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부모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인사드리고 지난 시절 제가 겪은 많은 일들과 제가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104쪽)

어린 시절 이름이 ‘승만’이었던 이 전 장관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은 한국 전쟁 당시 혈연단신 남한에 내려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앞으로 나아갔던 지난날들에 대한 회고다.

또한 전쟁 당시 홀로 떨어진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다 피난길에 오르지 못해 결국 미국 폭격에 맞아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부모님에게 드리는 전상서이기도 하다.

이 전 장관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과 학도병으로 지원해 전방 최전선에서 총상을 맞고 미군에 의해 후송되어야 했던 아찔한 순간들, 그리고 명예제대 후 고려대에 입학해 훗날 이 나라의 살림을 도맡아 한국 경제의 기틀을 마련할 재무부 장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날들을 마치 편지를 쓰듯 조근 조근 침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머님께서 구워 주신 찹쌀떡 세 개와 손수 떠주신 양털 스웨터를 입고 집을 나섰던 17세 소년은 어느덧 미수(米壽)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잘한 것도 없는 그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은, 후손들이 앞으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이 전 장관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거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서 행정발전과정을 수료했다. 1971~197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금융 및 통화 정책을 담당하는 재무 국장으로 일했다. 1985~1988년 신한은행 총재 겸 집행위원장, 1988~1990년 이사회 의장 겸 외환은행장, 1990~1991년 은행 감독 및 심사 책임자를 역임했다. 1991~1993년 노태우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두란노. 240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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