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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당시 5년제였던 배재중학교를 나와 일본 도요(東洋)대에 진학해 척식과를 졸업했다. 1948년 육사 제7기 특별반 출신인 고인은 육군 3사단 22연대 부연대장을 맡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김일성고지' 탈취 작전과 1952년 9월 말 '피의 고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참여한 고인은 1961∼1963년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1963년엔 국가재건최고회의 운영기획분과 위원장을 거쳐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고인은 1963년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1963∼1980년 고향인 전북 정읍·김제 지역구에서 6∼10대 의원을 지낸 5선 출신이다.
고인은 1963년부터 1972년에 이르기까지 약 10년 동안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1964년엔 일명 '4대 의혹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필(JP) 당 의장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JP는 당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다. 4대 의혹 사건은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 밑에서 발생한 네 가지의 부정부패사건으로 '증권파동·워커힐사건·새나라자동차사건·파친코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건들은 당시 군정 고위급 관계자들과 엮여있어 큰 파문이 일었다.
1964∼1973년 10∼17대 대한유도회장을 지냈다. 고인은 배재중 재학 당시부터 유도를 배워 지난 2004년 명예 10단에 오르기도 했다. 1976년엔 제1무임소 장관을 역임하고 1980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기업을 운영한 고인은 보수단체인 자유수호국민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2007년 출간한 회고록 '나는 아직도 멈출 수 없다'엔 농림부 장관 시절 고리채 정리, 농업은행과 농협 통합, 농협대학 설립, 산림녹화사업 등의 내용이 담겼다.
4녀(장수경·장선영·장선진·장수정)의 유족을 둔 고인의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