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원유·현금흐름까지 쥔다”…트럼프 행정부, 베네수엘라 ‘석유 통치’ 구체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108010003420

글자크기

닫기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승인 : 2026. 01. 08. 08:09

원유 통제, 베네수엘라 변화 지렛대"
생산·판매·수익 배분 '무기한 관리'
"제재 위반 용납 못 해" 카리브해·대서양 동시 작전
나포된 원유도 판매, 수익금 독점 관리
TOPSHOT-US-VENEZUELA-RUSSIA-CONFLICT-TRANSPORT-OIL
유조선 마리네라호(구 벨라 1호)가 2025년 3월 18일 싱가포르 해협 해상을 지나고 있다./AFP·연합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축출 이후, 베네수엘라의 핵심 자산인 원유에 대해 생산·운송·판매·대금 결제·수익 배분까지 사실상 전면 통제를 추진하고 있다.

미군은 제재 회피 '암흑·그림자 선단(shadow·dark fleet)' 단속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에서 러시아 국적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실력 행사에 나섰다.

◇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원유 구상 "돈줄 쥐고 국가 개조"...생산·판매·수익 배분 '무기한 관리'

미국 에너지부와 국무부는 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가 수출길이 막혀 저장고와 유조선에 쌓아둔 3000만~5000만 배럴의 원유를 미국이 인수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의 집행 권한까지 독점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골드만삭스 주최 행사에서 "통제가 무기한(Indefinitely) 계속된다"며 재고 원유 판매가 끝이 아니라, 앞으로 생산될 원유까지 미국이 통제할 것임을 시사했다.

라이트 장관은 원유 판매 통제권이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변화를 강제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가 베네수엘라에서 꼭 일어나야 하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 원유 판매에 대한 지렛대와 통제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나오는 원유를 시장에 내놓을 것인데, 처음에는 비축된 원유를, 그리고 앞으로는 무기한으로 생산되는 원유를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US-MILITARY-CARIBBEAN-TANKER-SEIZURE
미 남부사령부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미군이 7일(현지시간) 카리브해에서 유조선 'M 소피아(M Sophia)호'를 나포하는 모습으로 미국 남부사령부가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공개한 영상을 캡처한 사진./AFP·연합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의회 브리핑에서 이 계획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마두로 측 인사들이 남아있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원유 통제권이 그들을 압박할 '가장 강력한 지렛대'라고 설명했다.

루비오 장관은 원유 판매 수익금이 베네수엘라 정부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은행 내 '미국 정부가 통제하는 계좌'에 예치돼 마두로 정권이 아니라, 미국 행정부의 재량에 따라 베네수엘라 국민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해상 나포 등 제재, 일부 제재 완화로 판매 통로 통제, 계좌 통제 등을 통해 베네수엘라 원유의 글로벌 유통을 사실상 '허가제'로 묶는 설계에 가깝다.

루비오 장관은 베네수엘라 재건의 '회복(Recovery)' 단계에서 셰브런·엑손모빌 등 미국과 서방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시장에 공평하게 접근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위해 9일 백악관에서 주요 석유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USA-URANIUM/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2025년 9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서 열린 로이터 넥스트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로이터·연합
◇ 미, 베네수엘라 원유 완전 통제...주권 침해 소지..."석유 시장 전례 없는 일"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현대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준의 주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석유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 재고 원유의 가치가 약 15억~25억달러(2조1800억원~3조 6000억원)에 달하며, 이는 중질유를 선호하는 멕시코만(미국만) 연안 미국 정유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돈을 통제할 것"이라고 했다며 미국이 베네수엘라 재건 비용이나 미국 기업의 과거 손실 보전 명목으로 수익금을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계획을 두고 "어떤 현대 미국 정부도 타국의 석유 수출 전반에 대해 이토록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려 한 적은 없었다"며 과거 유엔이 이라크를 상대로 진행했던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조차 국제기구의 감시하에 있었지, 특정 국가가 독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이슨 보도프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장은 "미국이 석유 산업을 운영하게 하는 것만이 한 국가가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 접근법이라면 이는 최근 석유 시장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앨런 와이너 스탠퍼드대 법학 교수는 "무력에 의한 강요로 맺은 합의라면 그것은 불법이며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석유 인프라가 낙후돼 생산성과 수익성을 단기간에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이 수년간의 방치로 '재앙적 수준(catastrophic state)'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처럼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식된 파이프라인과 인력 유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수십억 달러와 수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기업들이 정치적 불안정이 해소되지 않은 베네수엘라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지 미지수라며, 행정부가 기업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베네수엘라 석유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카벨로에 있는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엘 팔리토 정유소로 2024년 2월 10일(현지시간) 찍은 사진./로이터·연합
◇ 미·영 북대서양 작전, 제재 위반 러 선적 급조 선박 나포

미국은 원유 통제권을 선언함과 동시에, 제재를 위반하고 원유를 밀반출하려는 '그림자 선단'에 대한 고강도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이 확인됐다.

미군은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란드 사이 북대서양 해상에서 러시아 국적 유조선 '벨라 1호(Bella 1)'를 나포했다. 그이 과정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당초 무국적 선박이었던 벨라 1호는 미국 해안경비대의 정선 명령을 거부하고 2주 넘게 도주했다. 도주 과정에서 선원들은 선체에 페인트로 조잡하게 러시아 국기를 그려 넣고, 선명을 '마리네라(Marinera)'로 변경한 뒤 러시아 선박으로 긴급 등록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이 배를 보호하기 위해 잠수함과 해군 함정을 파견해 호위(escort)를 시도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번 작전 성공의 배후에는 영국이 있었다. 영국 국방부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공군 정찰기와 해군 기지를 제공했다. 영국 국방장관 존 힐리는 이 배를 '러시아-이란 제재 회피 축의 일부'라며 작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고 FT는 전했다.

◇ 카리브해 작전, 베네수엘라 원유 선적 유조선 나포

미군은 이날 카리브해에서 또 다른 유조선 'M 소피아(M Sophia)호'를 나포했다. 벨라 1호가 비어 있던 것과 달리, 이 배에는 약 200만 배럴의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가득 실려 있었다. 미국 남부사령부는 이 배가 위치 신호를 끄고 운항하는 '암흑 선단' 활동을 했다며 억류한 선박을 미국 본토로 압송 중이라고 AP통신·WSJ 등이 전했다.

루비오 장관은 나포된 선박에 실린 원유 역시 미국이 통제하는 판매 계획에 포함시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법 유통망을 차단하고 그 이익을 미국이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 러시아의 반발과 긴장 고조

러시아는 이번 나포를 '국제법 위반이자 노골적인 해적 행위(blatant piracy)'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적법하게 등록된 러시아 선박에 무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며 억류된 러시아 선원들의 즉각적인 송환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미·러 간 외교적,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망했다.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