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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거 NPT 재검토회의에서 점차 높은 수준의 대표단을 파견해 왔다. 2022년에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가 총리로는 처음으로 같은 회의에 참석해 피폭국 정상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강조했다. 2025년 4월의 3차 준비위원회에서는 이와야 다케시 당시 외무상이 일본 외무상으로는 18년 만에 참석해 NPT 체제의 유지와 강화를 호소했다. 이에 비해 2026년 본회의에서 일본이 총리나 외무상 대신 외무부대신을 파견하기로 하는 것은, 격을 낮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핵군축 붕괴 속 '억제' 우선 선택
배경에는 국제 핵군축 질서의 약화가 있다. 2026년 2월 미국과 러시아 간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이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3월에는 프랑스가 핵전력을 증강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핵보유 5개국을 중심으로 한 NPT 체제도 안정을 잃고 있으며, 핵억제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2022년과는 정세가 일변했다. 핵억제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NPT에서 도덕적 군축 리더십을 계속 앞세우기보다는, 미국 핵우산에 의존하는 동맹 억제력 강화 쪽으로 외교 우선순위를 옮기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기시다식 '도덕외교'서 타카이치식 '안보외교'로
기시다 전 총리는 히로시마 출신이라는 정치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NPT 재검토회의 참석을 통해 '피폭국 외교'의 상징성을 극대화했다. 그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일본 외교의 브랜드로 내세우며, 비핵국 리더로서 핵군축 촉진을 요구해 왔다.
반면 다카이치 정권은 기시다식 도덕외교보다 군사·안보 상황을 우선하는 외교를 택하고 있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다카이치 총리가 3대 비핵원칙 가운데 '핵무기 반입 금지' 조항의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치는 등, 미국 핵우산 의존을 강화하는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 다수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현행 안보 구조를 유지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NPT 재검토회의에 총리·외무상 대신 외무부대신을 파견하는 결정은, 일본 외교가 '핵군축 리더'에서 '미일 핵우산 의존국'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다. 과거의 '피폭국 외교'를 상징적으로 내려놓고, 미국과의 동맹 억지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다카이치 정권의 외교 노선이 명확히 드러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