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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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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승인 : 2015. 02. 11. 11:33

거창양민학살
2015년 2월 11일은 짙은 안개로 인해 인천 영종대교에서 승용차와 관광버스 등 60중 추돌사고로 아수라장이 되고,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역사 속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6.25라는 혼란의 와중에서 수백명의 거창군 양민들이 학살되는 참극이 1951년 이날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1.4후퇴가 시작되면서 빨치산 대공세가 강화되자 거창군 신원면의 대현리, 중유리, 와룡리 일대에서 공비토벌 작전중이던 국군이 부락주민 719명을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었죠. 피해자 중 14세 이하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61세 이상의 노인이 74명이었습니다.

거창양민학살은 3월 초 거창 군민 2명이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에게 알리면서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4월 국회차원의 조사가 시작됐지만 계엄사령부는 군국 1개소대를 공비에 가장해 위협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등 조사를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4월 말,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거창사건을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결국 신정모 국방장관은 5월 초 장관직에서 해임됐고, 연대장과 대대장 등 관련자들도 그해 말 군법회의에 회부돼 3년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신 장관은 주일대표부 공사로 보내졌고, 관련자들 모두 1년 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1906년 이날은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전신)야구팀과 독일어 학교팀이 겨룬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렸습니다. 1940년은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창씨개명제를 실시했고, 1970년에 동경대 우주항공연구소가 일본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1990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 지도자인 만델라가 수감 27년만에 석방됐고, 같은 날 ‘핵주먹’ 타이슨은 무명의 더글러스에 KO패 당했습니다.

한편 1847년 미국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태어났고, 2010년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런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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