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 째를 맞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관리 부패와의 전쟁’은 어느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다 드라이브를 걸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게 바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뿌리깊은 관리들의 축재에 대한 본능이 아닌가 싶다. 이는 관리들의 권한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강력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기야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시장(市場)이 아닌 시장(市長)을 찾으라는 우스개소리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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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부패했다는 명나라 때의 환관 유근이 도륙을 당하는 모습. 청나라 말기에 조정에서 관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시연한 광경인 것으로 보인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그렇다면 중국의 관리들은 도대체 전통적으로 어느 정도 부패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바로 들어야 한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탐관오리 세 명에 대한 분석만 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유력 문화 전문지 두스원화바오(都市文化報)를 비롯한 언론의 최근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 역사에서 가장 어마무시한 3대 탐관오리로는 송나라 때 재상을 지낸 진회(秦檜), 명나라 때의 환관 유근(劉瑾), 청나라 때의 화신이 손꼽힌다. 정말 그런지는 이들이 지금 시세로 자신들의 시대에 축재한 검은 돈의 규모를 추산하면 잘 알 수 있다.
우선 진회의 경우는 지금 시세로 160억 위안(元·2조7000억 원)에 이른다. 재상을 지내 다소 청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지 모르나 그의 시대가 인구가 적고 경제규모가 지금보다 비교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름 대단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청나라 가경(嘉慶)황제 때의 화신과 비교하면 상대도 되지 않는다. 화신의 경우 당시 청나라 조정의 1년 재정 수입의 세 배를 개인 재산으로 축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화신도 유근에게는 밀린다. 유근의 재산은 지금 시세로 무려 960억 위안이었다. 지금 태어나 이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글로벌 부호 랭킹에도 진입할 수 있다.
이들은 당연히 탐관오리로서의 대가도 혹독하게 당했다. 모두들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특히 유근은 부패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는 괘씸죄가 더해져 칼에 의해 무려 3000 번 이상이나 도륙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완전히 다진 고기가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금 부패 관리들에게 가해지는 혹독한 처벌 역시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중국이 관리 부패와의 전쟁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보다 명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