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고무상의 권력을 향유했던 황제가 자아비판을 한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중국인에게는 성군으로 꼽히는 한(漢)나라 때의 무제(武帝)가 그랬다. 자신보다 훨씬 못한 황제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든 채 신하들과 백성들만 닦달한 케이스가 과거 역사에 수도 없이 많았으나 그는 인생 말년에 자신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참회록으로 불리는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는 지금까지 전해지면서 진정한 위정자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당연히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흉노를 토벌하기 위한 정복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또 당대 최고의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에게 궁형(宮刑)의 치욕을 안기는 선물을 선사했다. 남성의 심볼을 거세했으니 당시의 시각으로도 대단히 잔혹한 형벌을 가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정치 사상인 노자(老子)의 무위자연 철학을 유교로 바꾸는 과정에서 세상이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겪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의 권력으로 볼 때는 충분히 저지르고 남을 잘못이었다. 아니 조금 좋게 평가하면 다소 과한, 시대를 앞서 간 정치를 했다고 변명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데 정말 소홀하지 않았다.
이후의 황제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와 완전히 달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는 간혹 없지 않았으나 참회록을 쓴 경우는 정말 거의 없었다. 한무제가 지금도 대단히 돋보이는 이유가 아닌가 보인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은 신중국이 건국되던 1949년 이후부터의 황제였다. 중국이 왕조 국가는 아니었으나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구가했다고 말해도 좋다. 솔직히 그는 자질이 대단히 우수한 지도자였다고 단언해도 괜찮다. 철학과 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통치술 역시 남달랐다. 1976년 사망하지 전까지 무려 40여 년 가까운 기간 동안 공산당의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 그의 지적 능력으로 볼 때 그는 윤대죄기조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0년 동안 대륙을 완전히 암흑천지로 몰아넣은 문화대혁명을 발동하면서 내건 것이 바로 ‘조반유리(造反有理·반란을 일으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슬로건 외에 자아비판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는 문혁을 통해 실각한 당정 지도자들에게는 하나 같이 자아비판을 하도록 만들었다. 국가 주석을 지낸 류사오치(劉少奇)가 대표적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는 그럼에도 죽음을 면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마오 그 자신은 문혁 동안이나 이후에 전혀 본인의 과오에 대해 반성이 없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 2000만∼3000만 명이 문혁의 와중에 죽어갔는데도 그랬다. 문혁이 끝난 이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변명의 말을 주위에서 하기는 하나 솔직히 말이 안 된다.
덩샤오핑(鄧少平)에서부터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 이르는 이후의 중국 지도부 역시 공이 많은 만큼이나 과도 없지 않다. 황제로 불리는 지금의 시 총서기 겸 주석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각종 굴기(우뚝 일어섬)라는 말을 통해 중국을 막강한 국가로 이끌었으나 사회적으로 여러 부작용도 많이 만들고 있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적폐라는 말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가는 상황이라면 과거 정권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설사 양국 민초들의 입에서 과거와 현재 지도자들이 이제라도 한무제의 윤대죄기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더라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