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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샤오보에 이어 톈안먼 유혈사태 장본인 저우이빙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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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기자

승인 : 2017. 08. 1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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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으로는 엇갈렸으나 결국 운명은 거스르지 못해
1989년 6월 4일 발생한 이른바 텐안먼 유혈 사태의 지도자인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가 지난 달 사망한 데 이어 이번에는 진압군 수장이었던 저우이빙(周衣氷) 전 베이징 군구 사령관이 지난 9일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향년 95세. 이념적으로는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었으나 둘 모두 운명은 거스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족으로는 역시 장군인 저우샤오저우(周小周·61) 인민해방군 청두(成都) 군구 선후판(善後辦) 주임이 있다.

저우위빙
부자 장군으로 유명했던 저우이빙과 저우샤오저우. 아버지인 저우빙은 지난 9일 별세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중국 인권 정보에 정통한 소식통의 14일 전언에 따르면 그는 1922년 안후이(安徽)성 차오(巢)현에서 태어났다. 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7세 때인 1939년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신사군(新四軍)에 입대하면서였다. 이후 항일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 큰 전공을 세웠다.

국공내전에도 참전한 그는 장쑤(江蘇)성 화이안(淮安)과 하이저우(海州) 지구, 톈진(天津)과 장쑤성 푸커우(浦口)를 연결하는 진푸 지구에서 게릴라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인 1973년에는 장군으로 승진, 베이징 군구 부사령관과 참모장을 지냈다. 이어 1987년에는 베이징 군구 사령관에 취임했다. 1988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했다.

그에게 운명의 날이 다가온 것은 1989년 6월 4일. 류샤오보를 비롯한 지식인들과 학생, 청년들이 이끈 당시의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입한 이른바 ‘베이징 계엄 행동’의 부총지휘관으로서 계엄부대를 이끈 것. 당연히 그는 당시 중앙군사위 명령을 제38집단군 군장이던 쉬친셴(徐勤先) 소장에게 전달하면서 시위대를 진압토록 했다. 그러나 쉬 소장은 상부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항명한 것이다. 그로서는 당 중앙에 상황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쉬 소장은 보직 해임과 함께 당적박탈 처분을 받고 5년 동안 복역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 소장에게도 척을 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톈안먼 유혈사태의 당사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침묵을 지켰다.



홍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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