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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마오쩌둥 만년 최측근 왕하이룽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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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기자

승인 : 2017. 09. 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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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부부장 지내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주석이 만년에 가장 신임하던 최측근 인물 중 한 명이던 왕하이룽(王海容) 전 외교부 부부장이 타계했다. 향년 79세로 미혼인 탓에 직계 유족은 없다.

베이징의 유력지 신징바오(新京報)를 비롯한 중국 언론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왕 전 부부장은 전날 오후 1시 입원 중이던 베이징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묘하게도 마오 전 주석의 41주기인 9월 9일에 생을 마감하게 됐다. 장지는 베이징의 바바오산(八寶山) 혁명열사능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왕하이룽
만년의 왕하이룽. 마오 전 주석의 최측근으로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 고초를 겪은 바 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그녀는 마오 전 주석과 같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 출신으로 1964년 베이징사범학원 러시아어과를 졸업했다. 이어 베이징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외교부에는 65년 11월에 들어가 71년에 예빈사 부사장(부국장)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의 기록을 세웠다. 나이 고작 33세 때였다. 아마도 할아버지 왕지판(王季範)이 마오 전 주석의 이종사촌형이었다는 연줄이 작용하지 않았나 보인다.

이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마오 전 주석의 측근으로 일했다. 미중화해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방장관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방중 때 마오 전 주석의 영어 통역을 담당하면서 역사의 현장도 지켜봤다. 당연히 특수 신분과 지도부의 배려로 인해 이후에도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36세의 젊은 나이에 외교부 부부장에 올랐다.

그러나 1976년 마오 전 주석이 사망하면서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그녀 역시 고초를 겪지 않으면 안 됐다. 79년 외교부를 떠나 당 중앙조직부, 중앙당교를 전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후 84년 국무원 부주임으로 임명돼 근무하다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외교부의 ‘4대 금화(金花)’로 불리기도 했다.
홍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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