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지난 2009년, 스리랑카 정부군과 북부의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반군 사이의 내전이 종결됐다. 1983년부터 장장 26년에 거친 내전은 수많은 잔학 행위와 인종청소를 낳았고, 약 10만 명이 목숨을 잃고 2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 외견상 내전은 끝났지만 내전이 남긴 타밀족들의 상처는 아직도 선명하다. 이 가운데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스리랑카 라자팍사 가문은 최근 대통령과 총리직 등을 독점하며 권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내전은 1983년부터 2009년까지 총 26년간 스리랑카의 다수족인 싱할라족과 북부를 중심으로 한 타밀족 반군 LTTE 사이에 진행된 내전이다. 스리랑카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대부분이 불교를 믿고 있다. 스리랑카 인구의 15% 남짓한 타밀족은 주로 힌두교를 믿는다.
스리랑카 내전의 원인은 미얀마처럼 영국의 식민지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15년부터 스리랑카(당시 실론)를 식민지배하기 시작한 영국은 역시 다수 종족인 싱할라족을 통치하기 위해 소수민족인 타밀족을 내세웠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던 1948년 싱할라족은 100만 명의 타밀족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민족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1956년 스리랑카 정부는 법을 개정하며 그간 공용어로 쓰이던 영어 대신 싱할라어를 단일 공용어로 채택했다. 이후 싱할라족에 우호적인 정당들이 번갈아가며 국가 행정을 독점했고, 1972년에는 타밀족에게 불리한 대학입학제도와 타밀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싱할라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차별을 견디지 못한 타밀족은 저항했다. 자치 독립을 주장하며 1976년에 출범한 좌파 성향의 무장 반군 LTTE가 가장 대표적이다. 타밀족은 이후 몇 차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내전의 막이 오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83년 7월 24일, LTTE가 북부 자프나 인근 지역에서 정부군을 습격해 싱할라족 병사 1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스리랑카 정부가 즉각 보복에 나선 데 더해, 숨진 군인들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자 싱할라족은 24일부터 6일 동안 수도 콜롬보를 비롯한 전국에서 타밀족을 폭행, 살해하고 강간했다. 당시 3000명의 타밀족이 살해당하고, 2만 5000명이 다쳤으며 수 천 채의 가옥과 사업장이 파괴됐다. 이때 타밀족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가까운 인도부터 호주, 북미로 몸을 피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 흩어진 타밀족들에게 7월은 제노사이드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검은 7월’로 불린다.
이후 이어진 내전기간 동안 타밀족은 수만 명 이상이 살해되고 수십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갇히거나 인근 국가로 숨어들어야 했다. 수많은 피를 흘린 스리랑카의 내전은 2009년 5월 정부군이 LTTE가 관할하던 지역을 제압하고, LTTE가 전쟁포기를 선언하면서 종결됐다.
|
|
그러나 내전을 종식시키고 자치독립 시도를 분쇄한 이들은 ‘싱할라족’의 영웅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고타바야 라자팍사는 대선에서 승리를 거둬 대통령직을 거머쥐었고, 승리 직후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마힌다 총리를 포함해 5명의 의원과 3명의 각료를 배출했다.
이에 더해 지난 10월 22일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돼 이들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졌다. 현재 대통령 중심제에 의원내각제가 가미된 정치 체제를 운용중인 스리랑카에서 라자팍사 가문이 대통령과 총리를 모두 겸직하게 된 것이다.
자치독립의 꿈이 꺾인 타밀족은 흩어져 구심점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권을 움켜 쥔 라자팍사 가문엔 내전을 딛고 어떻게 통합을 이뤄낼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민심을 공략해 정권을 잡은 ‘철권통치’ 라자팍사 형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타밀족과 이슬람 사회에서는 소수 집단에 대한 탄압이 더해질까 걱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