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룩파, 쫑카파 사후 티베트 최대 종파로 성장
"달라이 라마, 쫑카파 사상 그대로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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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룩파는 까규파, 샤카파, 닝마파와 함께 티베트 4대 종파를 이루며 가장 영향력이 큰 종파다. 창시자인 쫑카파는 오늘날 티베트 불교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쫑카파란 티베트 말로 '쫑카 사람'이란 뜻으로, 그는 티베트의 동부 쫑카 지역(현재 중국 칭하이성 황중현)에서 태어났다. 8세에 '롭상닥빠'라는 법명과 함께 사미계를 받고 출가한 쫑카파는 여러 스승 밑에서 다양한 불교 교학을 배웠다. 학습능력이 남달랐던 쫑카파는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면모를 자랑했다. 그는 19세의 나이에 불교 교리로 상대방과 논박하는 변경(辯經)에 참여해서 승려들 사이에서 명성을 날릴 정도였다. 이후 그는 티베트의 모든 교파를 섭렵하며 현교(불교 교학)와 밀교(빠른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전해지는 비밀 수행법) 전통을 배워나갔다.
공부가 무르익자 쫑카파는 46세에 지금까지도 불교계에 큰 영향을 남긴 대작을 남긴다. '보리도차제광론', 흔히 '람림'이라고 불리는 이 저작은 까담파 승려 아띠샤의 '보리도등론'를 기반으로 상·중·하 단계를 나눠 단계별로 성불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보리도차제광론'은 겔룩파 교학의 정수가 담긴 책으로 오늘날도 중국·대만·서구권 등 티베트 불교가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기초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쫑카파의 위대함은 이뿐만 아니다. 이어 그는 48세에 밀교를 정리한 교과서 '밀종도차제광론'를 저술했다. 현교와 밀교 모두에 큰 족적을 남긴 셈이다.
쫑카파가 티베트 불교를 새롭게 발전시키자 그의 명성은 중국에도 전해진다. 명나라 영락제는 사신을 보내 그를 베이징에 초정했지만 쫑카파는 제자인 샤카예셰를 대신 보낸다. 이때부터 겔룩파는 티베트·몽고를 넘어 명·청 등 중국 왕조와도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겔룩파가 다른 티베트 불교 종파와 다른 점은 계율을 중시한 비구(남자 승려) 승단이란 점이다. 당시 다른 종파들은 출가자와 재가자 구분이 희미해졌고 세속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경향이 컸다. 쫑카파는 청정한 승려가 제일 뛰어난 성취를 얻는다는 견해를 가졌다. 겔룩파의 상징이 된 쫑카파가 쓴 노란 모자(통인관)는 계율의 부흥을 상징한다. 또한 그는 밀교 전통이 강한 티베트 불교 안에서 불교 논리학·유식학·중관학 등 교학을 철저히 배울 것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그는 교학을 완벽하게 닦기 전에는 밀교를 배우지 못하도록 금했다. 엄격한 계율을 따르는 출가자가 치밀한 논리까지 갖춰야 합리성이 체화되고, 신비주의 수행을 하면서도 타락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는 티베트 불교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판이 됐다. 샤머니즘을 선호하는 유목 문화권을 넘어서 전 세계로 티베트 불교가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쫑카파의 학풍이 계승된 까닭이다.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는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티베트 불교가 인기를 끄는 것도 합리적인 서구 문화와 잘 맞기 때문"이라며 "쫑카파가 아니었으면 현재 티베트 불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자비심과 출리심, 도덕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게 현재 달라이 라마 존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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