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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2인자 “아베 총리 유족과 日 국민께 사죄...통일운동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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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 기자

승인 : 2022. 07. 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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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환 통일교 전 세계회장 긴급 기자회견
"문선명 총재 사후 교회체제 개혁 시도 저지"
"아베 총리 암살 배경, 교회 개혁 실패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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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2인자'였던 곽정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전 세계회장은 19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아베 총리의 사망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유족들과 일본 국민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 아울러 문선명 총재 사후 통일운동이 변질돼 오늘날의 비극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사진=황의중 기자
"한때 통일교의 중요한 직책을 역임한 사람으로 아베 총리의 서거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아베 총리의 저격 사건은 통일운동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19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한때 '통일교 2인자'였던 곽정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새 명칭) 전 세계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곽 전 회장은 1958년부터 2009년 말까지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 옆을 오랜 시간 함께 한 인물로, 통일그룹 회장은 물론 초대 세계일보 사장·전 워싱턴타임즈 회장을 역임한 통일교 내 핵심 인사다. 한때 문 총재의 후계자로 꼽혔던 3남 문현진 통일교세계재단(UCI) 회장의 장인으로, 문 회장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기 전까지 '통일교 2인자'로 알려졌다.

현재 통일교는 문선명 총재 사후 부인인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와 3남 문현진 회장, 7남 문형진 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회장 등으로 니눠진 상태다.

고인이 된 아베 총리의 명복을 빌면서 기자회견을 시작한 곽 전 회장은 암살사건의 발단이 되는 배경을 문 총재 사후 통일교의 분열에서 찾았다. 그는 아베 총리 암살사건과 문현진 회장이 무관하다는 것과 문 회장의 후계자 박탈이 오히려 비극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곽 전 회장은 "2001년 문 회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교회의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기 위해 당시 헌금활동을 책임지고 있었던 일본 통일교회의 광역 책임자 전원을 면직시키고 정상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려고 노력했다"면서 "헌금을 만들어내는 '경제부대'에서 정상적인 섭리 운동 조직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회장의 시도는 출발부터 저항에 부딪혔고 일본 통일교 조직에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했다"며 "문 회장을 반대한 세력들이 한학자 여사와 4남 문국진씨, 7남 문형진씨 등을 끌어들였고 문 회장은 결국 통일교에서 쫒겨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곽 전 회장은 "2001년도 (후계자로 상당 권한을 받았던) 문 회장이 일본 현실을 듣고 대단히 가슴 아파하면서 본래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벗어났다고 인사조치했다. 그 후로 총재님 앞에 온갖 거짓보고가 갔던 것 같다"며 "문 회장이 일본에 손을 쓸 수 없게 되자 '영감상법(헌금을 유도하는 일종의 방문 판매) 같은 옛날 방식으로 헌금을 걷던 지도자들이 다시 복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하고 신도들의 재산을 자신들의 치부를 위해 강탈하는 이런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며 "신도들의 피 같은 돈으로 짓고 있는 가평의 저 화려한 석재건물들은 하나님의 뜻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곽 전 회장은 현재 통일교의 주류 세력을 비판하면서도 통일교와 일본 자민당 정치인의 유착 의혹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곽 전 회장은 "문 총재는 기시 노부스케 전 수장, 아베 총리의 아버지 아베 외무상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어떤 이권이나 정치적 관계는 아니다"라며 "일본 학생들이 60년대 좌경화 경향이 강해지면 이를 우려한 일본 정치인들이 통일교의 젊은이 교육에 관심을 보였고 이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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