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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씨어터토크]결코 헛되지 않은 브론테들, ‘웨이스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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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2. 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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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티드_공연사진_(2)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한 장면./제공=연극열전
여성으로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19세기 초 영국. 사회적 통념을 깨고 출판 활동을 벌였던 극작가 자매들이 있다.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이들보다는 조금 덜 알려져 있지만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앤 브론테가 그들이다. 뮤지컬 '웨이스티드'(칼 밀러 극작·작사, 크리스토퍼 애쉬 작곡)는 이들이 요크셔의 작은 마을 하워스에서 가난과 병마와 관습에 꺾이지 않고 소설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록 음악에 담아 보여준다.

뮤지컬에서 인물들의 파격적인 행보를 담기에 아직 록 만한 장르는 없다. 의상과 무대의 질감은 시간적 배경이 2세기 전임을 알려주지만, 32곡의 폭발적인 록 넘버들이 '지금, 여기'에서도 유효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4인조 밴드가 연주하는 포크·펑크·사이키델릭·블루스·가스펠·메탈 등이 섞인 록이 극을 이끈다. 배우들은 노래할 때마다 핸드마이크를 집어 드는데, 이는 단순히 콘서트 느낌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핸드마이크는 펜 대신 글을 쓰는 데 활용되는 등 내면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도구로 기능한다. 2018년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에서의 초연 때는 삼면 무대 위에 밴드를 올려놓는 등 콘서트 형식을 더욱 강조했었다.

이번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의 한국 공연(박소영 연출)은 3시간가량 되는 길이를 2시간 반으로 축소하고 무대를 좀 더 극적으로 활용했다. 드라마가 강조된 구성은 아니지만 매우 구체적인 가사로 인물들 각자의 개성과 서사를 뚜렷하게 전달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인 샬롯(유주혜)은 소설 속 제인 에어처럼 가정교사로 활동하면서 혼란스러운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집안을 돌보고 동생들을 독려하여 함께 출판사에 글을 보내는 등 강인한 면을 보인다. 에밀리(홍서영)는 마치 '폭풍의 언덕'에서 느껴지는 야생성과 폐쇄성을 현현해 놓은 느낌이다. 노래뿐 아니라 강한 분장과 의상으로 천재적이고 거친 성격을 표현한다. 일견 20세기 중반에 '워터링 하이츠'('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저택의 이름)라는 컨셉 앨범을 냈던 케이트 부쉬를 오마주 한 느낌도 준다. 앤(장민제)은 자매들 중 유일하게 결혼을 갈망하기도 하는 등 신앙심이 깊고 언니 말도 잘 듣는 소박한 성격으로, 자기주장이 강하진 않지만 인물들 간의 균형을 잡아준다.


웨이스티드_공연사진_(7)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한 장면./제공=연극열전
한편, 이 작품에 브론테 자매들뿐 아니라 남자 형제인 브랜웰(김지철)도 등장한다. 그의 캐릭터는 이전의 예술가 소재 공연이나 영화 등에서 주인공들이 보여준 멜랑콜리를 패러디한 면이 있어서 웃음을 선사한다. 아들로서 부모님으로부터 기대와 혜택을 받으며 나르시시즘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청년이 되자 닿을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울증에 빠져 헤매는 등. 그의 이러한 특징을 감미롭고 슬픈 넘버들에 담아 놓은 점도 재치 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브랜웰을 뾰족한 시선으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도 다른 브론테들처럼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 애를 쓰다가 스러져간 젊은 예술가로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뮤지컬의 결말은 열려 있다. 결국 아서 니콜스 부인이 되어 목사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여념이 없는 샬롯. 그녀를 각성시키듯 울려퍼지는 타이틀 곡의 시적인 가사에는 페이소스와 희망이 뒤섞여 있다. 가사의 내용처럼 짧은 생애 동안 고군분투했지만 마음껏 재능을 펼치지 못한 인물들에게 생은 허무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견뎌야 했고,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열정을 갈아 넣은 그들의 글은 후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샬롯은 알았을까 '제인 에어'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회자될 줄을. 이 뮤지컬의 이야기와 노래는 담백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성 있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우리의 고군분투 역시 낭비되지도, 버려지지도 않고 후대에 남겨질 것임을.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lizhyun74@gmail.com)


현수정 공연평론가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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