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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공간 그리고 상상력의 확장, 도쿄 니키카이오페라 ‘투란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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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2.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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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팀랩 그룹과 협업 통해 환상적인 무대 선보여
(c)teamLab, Daniel Kramer, Tokyo Nikikai Opera Foundation1
도쿄 니키카이오페라 '투란도트'의 한 장면. (c)teamLab, Daniel Kramer, Tokyo Nikikai Opera Foundation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그의 동료 믈라덴 돌라르는 저서 '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에서 오페라는 이제 '박제가 되어버린 예술'이라고 언급했다. 이 책은 오페라에 관한 전문서적이라기 보다는 오페라를 통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있는 철학서에 가깝다. 그리고 오페라에 대한 이러한 돌라르의 지적을 단편적으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오페라가 다른 예술에 비해 과거의 영광에 머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돌라르에 따르면 고색이 창연한 오페라는 이미 서거한 상태지만 좀비처럼 살아남았고 심지어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3일 일본 도쿄에서 이 종합적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시도가 있었다. 도쿄 니키카이오페라 재단(이하 도쿄 니키카이)이 다학제 아트 컬렉티브 팀인 일본 팀랩(teamLab)과 협업하여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공연했다. 이 공연은 지난 2022년 6월 스위스 제네바 그랑제네브극장에서 초연됐고 이번 도쿄 니키카이 공연이 아시아 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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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니키카이오페라 '투란도트'의 한 장면. (c)teamLab, Daniel Kramer, Tokyo Nikikai Opera Foundation
1952년 출범부터 1세대를 계승해 더욱 발전시키고자 2세대 오페라를 표방한 만큼 도쿄 니키카이는 일본오페라에서 매번 참신하고 기존과는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팀랩의 여러 가지 전시들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만큼 이번 공연도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무대는 다니엘 크래머가 연출한 제네바 공연과 같은 프로덕션이었으며, 성악가 등 출연진들을 도쿄 니키카이의 캐스팅으로 다르게 선보였다. 특히 도쿄 니키카이는 일본인 성악가만으로 오페라를 공연하는데 많은 의의를 두고 있다.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 공연장인 우에노 문화회관 안에는 이미 상당한 안개가 채워져 있었다. 디지털아트가 선명하게 부각되고 시각 효과를 극대화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막이 오르자 기학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무대 2개가 양면으로 세팅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팀랩의 디지털아트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대세트가 복잡하기보다 단순하게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됐다.

본래 오페라 '투란도트'의 도입부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여러 갈래로 얽혀있는 이야기가 자세한 설명 없이 전개되기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여기에 디지털 아트라는 시각적 장치까지 더해져 초반에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산만한 느낌이었다. 관객으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배경영상, 레이저 등등 빛의 향연이 쉬지 않고 펼쳐지는 오페라 무대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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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니키카이오페라 '투란도트'의 한 장면. (c)teamLab, Daniel Kramer, Tokyo Nikikai Opera Foundation
투란도트가 낸 수수께끼의 희생양인 페르시아 왕자가 사형을 당하자 하얀 연기가 무대 위를 떠돌았다. 마치 왕자의 영혼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아 기존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대효과가 나타났다. 인물의 심리가 영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면서, 감정과 음성의 변화에 따라 영상이 함께 요동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팀랩의 작업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호작용성이 적용된 것으로 보였다. 특히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는 순간 레이저와 같은 빛이 극장 전체로 뻗어나가며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2막의 무대는 더욱 화려해졌다. 그러나 디지털 아트가 아닌 인물의 형광색 의상과 무대 천정에서 내려오는 황금색 원형 리프트 등 고전적인 실제 무대장치를 활용했다. 2막 끝에 왕자가 결국 퀴즈를 모두 맞추자 무대 밖 양 측면으로 확장되는 레이저에 미디어 아트, 공중에서 흩날리는 꽃가루까지 우리 시대의 모든 무대효과가 총동원된 인상을 받았다.

이처럼 시각적 장치의 퍼레이드가 계속 되는 가운데 작품의 중심을 잡아준 것은 음악적인 부분이었다. 특히 여성 성악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투란도트 역할의 소프라노 나오미 다사키와 류를 노래한 소프라노 미키코 다케다는 출중한 실력으로 작품을 빛냈다. 다사키는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송곳 같은 음색과 동양인 소프라노라고 믿기 어려운 풍부한 힘과 성량을 자랑했다. 다케다는 우아하고도 호소력 넘치는 가창으로 가련한 류를 애처롭게 잘 그려냈다. 이밖에 핑, 팡, 퐁 역할을 맡은 바리톤 히로마치 고바야시, 가즈로 고다마, 야스히토 신카이도 좋은 빛깔의 음색과 빼어난 연기력으로 작품의 감초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이들은 1막에서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싼 채 근엄하게 노래하다가 2막 속내를 털어놓은 부분에서는 형광빛 우스꽝스러운 의상과 몸짓으로 황실 대신의 숨겨진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반면, 도쿄 니키카이의 간판 성악가이기도 한 테너 타츠야 히구치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도쿄 니키카이의 수많은 오페라에서 아름다운 미성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테너였지만 칼라프 왕자 역할과는 잘 맞지 않았다. 하이라이트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아쉬운 대로 넘어갔으나 그가 드라마틱 테너의 영역까지 반경을 넓히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c)teamLab, Daniel Kramer, Tokyo Nikikai Opera Foundation5
도쿄 니키카이오페라 '투란도트'의 한 장면. (c)teamLab, Daniel Kramer, Tokyo Nikikai Opera Foundation
이날 오페라가 균형을 유지한 것은 지휘자 디에고 마테우스의 힘이 컸다고 본다. 마테우스는 뉴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현악과 관악 파트의 연주력을 이끌어내면서 전체적인 볼륨과 강약 조절을 능숙하게 해 현란한 시각적 장치에 밀리지 않는 음악을 완성했다. 또한 니키카이 합창단과 NHK도쿄 어린이 합창단도 오케스트라와 좋은 하모니를 이뤘다.

탄생한 이래, 지난 400여 년 간 이어져온 오페라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그동안의 오페라는 드라마와 음악의 이상적인 결합을 추구해왔다. 음악과 드라마는 팽팽한 균형을 이루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본질이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미래의 오페라에서는 음악과 시각적 이미지의 이상적인 결합이 화두가 되지 않을까 한다. 프로젝션 매핑, 미디어 파사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등등 이름도 생소한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면서 오페라 무대는 더욱 호화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믈라덴 돌라르가 말한 대로 현대 오페라의 '그 규모와 기술적 진보 일체는 과거의 어떤 것도 왜소해' 보이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 아트를 통해 오페라는 보다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었고, 영상예술은 재현의 공간을 3차원으로 확장했으며, 관객의 상상력은 보다 넓게 발휘될 수 있다. 이번 도쿄 니키카이의 '투란도트'는 그 변화를 직접 확인한 무대였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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