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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의 내가 스며든 박물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다가서는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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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18. 18:06

<10>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
아프리카 전통건축으로 꾸민 전시실
아프리카 전통건축으로 꾸민 전시실.
여러 박물관 가운데 최근 십여 년 사이에 가장 적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곳이 바로 어린이 박물관이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 어린이는 그냥 와서 전시를 보고 가는 수동적 관람객이 아니라 그들만의 경험과 지식을 분명히 갖고 있고, 박물관이란 장소에서 사회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아가는 능동적 학습자로 변했다. 이에 따라 어린이들을 놀이를 통해 관찰하고 배우고 느끼고 표현하는 적극적인 학습자로 보고 전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오늘 박물관은 '최고의 배움은 여행에서 얻어진다'던 어느 유명 작가의 말에 귀 기울이며 돌아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여행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도 함께 느끼게 될 거라 믿는다.

캐나다 사람들은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가족이 신나게 놀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 오타와의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Canadian Children's Museum)'을 권한다. 이 박물관의 콘셉트는 '세계를 만나게 하는 여행'이다. 아이들에게 여행이란 작은 모험과 다름없다. 전 세계를 어린이의 눈으로 경험케 하는 곳, 더구나 각국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어느 한 곳도 소홀하게 꾸며지지 않은 이곳이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1989년 개관한 캐나다 어린이 박물관은 지금까지 800만명이 넘는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이 찾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같이 있는 역사박물관 입장료에 포함돼 있어, 따로 내지 않아도 되고, 넓은 정원에서는 랜드마크인 캐나다 국회의사당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리도(Rideau) 운하도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움을 더한다. 이 박물관의 슬로건은 '위대한 모험(Great Adventure)'. 문화에 대한 지식의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입구에서 여권(패스포트)처럼 생긴 입장권을 받아 여러 나라의 상징적 장소를 방문한 뒤 나라별로 입국 스탬프를 찍으면 작은 기념품도 받게 된다. 예술, 문화, 역사가 기억 속에 남겨지는 첫 발자국인 셈. 호기심과 기대감이 잘 결합된 구조다.

교차로 입구를 통과하면 화려한 그림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그려진 파키스탄 버스와 태국의 교통수단인 툭툭(tuktuk), 1800년대 싱가포르의 교통수단이었던 트라이쇼(trishaw), 마을에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 작은 서점, 시장놀이를 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인 통관항구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고유한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일본 전통 가옥에서 전통놀이인 종이접기(오리가미)를 직접 해볼 수 있으며, 인도 서부지방 신화 속의 결혼이야기가 그려진 벽화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그림자극 와양 쿨릿(Wayang Kulit)의 인형도 만져 보고, 멕시코 대표 요리인 토르티야(Tortilla)를 만드는 체험도 귀한 경험으로 쌓인다. 아랍 남자들이 머리에 쓰는 사각형 천을 두르고 발목까지 닿는 흰색 긴 소매 의상도 입어볼 수 있으며,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전통가옥에서 얇고 긴 외투 형태의 전통의상도 체험할 수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 안에서 미로 찾기를 하고, 사막의 낙타조형물 앞에서는 기념사진도 남긴다. 그리고 다양한 가게들 안에는 아이들이 주인도 되고, 손님도 되는 즐거운 체험공간이 펼쳐져 있다.

게다가 스튜디오, 영화관, 캐나다가 최초로 발명한 아이맥스(IMAX) 전시관까지 빼곡하게 들어있다. 아이들이 직접 음향 및 조명 등을 조절해 무대 연출을 할 수 있는 얄미울 정도로 예쁜 소극장도 탐이 난다. 무대 뒤 분장실에서 의상을 골라 입고 무대에서 동행한 가족들과 함께 소규모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그 시간들도 부럽기 그지없다. 박물관의 다양성과 풍부한 콘텐츠들이 어린이들만의 속도로 탐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에 나는 무릎을 쳤다.

누구나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를 떠올릴 것이다. '모든 모험은 첫걸음을 필요로 하지…너는 너만의 지도를 만들어야지…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내 기분은 '행복'이야…어제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고'. 7살 앨리스가 토끼굴에서 떨어져 도착한 이상한 나라에서 마법 같은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꿈에서 깨어난다는 그 동화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가 바로 이 박물관이 아닐까.

이곳은 세계인들이 살고, 배우고, 일하고, 노는 풍경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게 어린이가 누릴 소중한 권리 중 하나인 것처럼.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지만, 아침 일찍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어린 여행자들이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박물관의 이런 슬로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어린이 박물관으로! 그러면 아이들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여행을 통해 창의성, 자신감, 열정, 친화력, 독립심과 끈기를 얻었다는 데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쟁하기보다는 스스로 성장하는 가장 좋은 계기가 여행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놀면서 공부한다'는 당의(糖衣)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여행일 테지만, 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체험하며, 그것을 자기 삶의 일부로 만드는 사람이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 중 많은 이가 훌륭한 여행자였다. 우리가 세상을 누비는 여행길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문밖에서 느긋이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이 박물관이 '세상의 길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아이'를 만나게 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그 믿음 속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우리의 여행DNA가 부질없는 아쉬움과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김정학 前 대구교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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