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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상장 주식 평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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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21. 17:47

2025052001010015567
이제홍(공인회계사·태성회계법인회장·전 부산지방국세청장)
나이 80에 가까운 L회장은 상속세 문제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본인이 지분 77%를 가진 비상장사 K 때문이다. 상속세가 예상외로 막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의 회계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K의 '보충적 평가액'은 무려 7685억원, 지분 77%의 상속세 3550억원이 나온다. 상속세율 50%에 지배주주 가산 20%가 붙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니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더 황당한 사실이 있다. 거의 동일한 조건을 지닌 상장사 D는 지난달 기준 시가총액이 2115억원이고, 지분 77%에 대한 상속세는 977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L회장의 상속인은 D사보다 상속세로 2572억원 더 부담해야 한다.

반대로 상장법인 H는 지난달 기준 시가총액이 8819억원이고 그에 대한 상속세액은 5291억원이다. 만약 상장하지 않았다면 보충적 평가액은 962억원이고, 상속세는 557억원이 된다. 즉 상장으로 인해 주주는 상속세를 4714억원 더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같은 회사인데 '상장' 여부 하나로 상속세가 이렇게까지 달라지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비상장주식을 평가할 때 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만으로 가중 평균한 값으로 평가하는 보충적 평가방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가중평균가액이 1주당 순자산가치에 100분의 80을 곱한 금액보다 낮은 경우에는 1주당 순자산가치에 100분의 80을 곱한 금액'으로 한다는 하한 규정도 있다. 거래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비상장주식을 장부상 수치만으로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공정시장가치(FMV· Fair Market Value)' 개념을 중심으로 비상장주식을 평가한다. 미 국세청(IRS)에 따르면 공정시장가치는 자산이 강요받지 않은 상황에서 양 당사자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거래에 임할 경우 교환될 수 있는 가격이다(IRS Revenue Ruling 59-60). IRS는 공정시장가치를 산정할 때 단일 방법만이 아니라 다양한 접근 방식을 종합적으로 사용한다. 자산접근법은 회사의 순자산(총자산-부채)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수익접근법은 회사의 순이익, 미래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인)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접근법은 유사한 상장기업의 시가(PER, PBR 등)를 참고해 비교 평가하는 방식이다.

L회장은 비상장사 K주식의 지분 77%인 77만 주를 갖고 있다. 이 중 10만주를 누군가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지분율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마침 투자자 Y는 K 주식을 사겠다고 나섰다. 둘 다 흥정할 준비가 돼 있고 서로 강요 받은 사실도 없다. Y는 K에 대해 충분한 정보도 갖고 있다. 게다가 코스닥에 등록된 비슷한 기업 D의 주식 10%가 최근 211억원에 거래됐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L회장과 Y가 거래를 한다면 얼마에 거래가격은 얼마가 될까. 상식적으로 D주식이 211억 원이라면, 비슷한 조건을 가진 K주식도 그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K는 비상장사다. 즉, D처럼 자유롭게 주식을 사고팔 수 없다. 이른바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Y는 "같은 조건이라도 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K 주식은 좀 더 싸게 사야지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에 따라 거래가격은 D주식보다 낮게, 즉 211억 원보다 낮은 가격에서 형성될 것이다. 바로 그 가격이 K 주식의 FMV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는 이미 공정시장가치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세법은 아직 '보충적 평가방법'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보충적 평가방법은 1973년 초 도입된 제도다. 당시에는 상장사가 113곳에 불과했고 비상장사도 5만곳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장사는 2700여 곳, 비상장사는 무려 100만개가 넘는다. 비상장사 수가 20배로 폭증했는데, 주식평가방식은 예전 그대로니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상장주식의 평가문제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창업자와 후계자, 회사의 생존문제, 국가 경제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중대한 문제다.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장부상 수치가 아니라 시장의 눈으로 봐야 한다. 살아 있는 시장의 흐름, 투자자들의 판단, 유동성 등을 고려한 공정시장가치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정과세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비상장주식 평가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홍 공인회계사·태성회계법인회장·전 부산지방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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