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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법과 군대는 '기술'이나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과 군대는 다른 헌법 및 법률기관들과 다르다. 사법은 법의 적용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군대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사회안전 장치다. 이 두 영역은 전문성과 숙련된 지속성 그리고 책임을 기반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정치권력의 성향에 따라 흔들리거나 좌고우면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에서는 정치가 사법과 군대를 흔들려고 하고 있다.
앞서 본 것처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이 '대법관 증원'을 선언하며 "우리는 팀플레이다"라는 표현으로 당 차원의 공감대를 시사하여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곧 대법원 구성을 재편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법원 판사들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업무를 하지만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사건 처리가 부득이 지연되는 문제가 심각하므로 대법관 '100명도 부족하다'고 하지만, 속내는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대거 임명하여 사법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 그 자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표를 의식해 "지금은 사법개혁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나섰지만, 그동안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찰 수사권 축소, 법관 탄핵 추진 등을 진행해 왔고, 대법관 정원 확대와 비법조인 임용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입법 및 행정권력에 이은 사법부 장악 의도를 명백히 하였고 잠시 그 실행 시기를 늦춘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입법, 행정과 더불어 권력분립 원리하에서 사법을 담당하는 보루이다. 그런 대법원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채워진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삼권분립 국가라 할 수 없다.
정청래 의원은 방송에서 "상상 그 이상의 상상이 필요하다"고 발언하였는데, 그 표현은 자유민주주의를 상식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 민주당 박범계, 장경태 의원이 '비법조인 대법관'과 '대법관 100명 증원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했지만 이는 사법부 장악을 통해 권력통합을 완성하겠다는 발톱을 잠시 숨긴 것에 불과하다.
그뿐 아니다. 이재명 후보는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이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안보와 국방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고, 김어준, 김제동 같은 비법률가들도 대법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황당한 발상과 맥락이 연결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위험이 지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단순히 '문민 통제'라는 허울 좋은 명분만으로 비전문가에게 군령권과 군정권을 위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안보는 이념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문민통제보다 더 중요하며, 이를 잊으면 국민의 생명과 국가는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사법과 군사 이 두 영역은 모두 국민의 권리를 최종적으로 보장하고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는 국가 최후의 보루다. 그 역할이 중대하고 핵심적인 만큼,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 윤리를 가진 사람들이 맡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과 민주당이 두 영역에 대해 반복해서 '비전문가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다.
사법과 군대가 제 기능을 하면서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정치로부터의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가장 훌륭하게 작동한다. 정치가 이 둘을 흔들면 국민은 불안해지고 국가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행정권과 입법권을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 권한은 민주공화국의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고 본래 그들의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헌법과 법률은 정치권력이 사법과 군대의 독립성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이것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기도 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비법조인 대법관이 아니고, 문민통제라는 허울하에 등장하는 군사 비전문가 민간인도 아니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와 대한민국의 안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안보전문가가 장관을 맡은 국방부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세력이 그 권력을 남용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사법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국방을 유지하는 기본을 무너뜨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여해 객원논설위원, 수원대학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