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국방수권법, 주한미군 병력 현행 수준 유지 명시
군 통수권자 대통령, 변경 가능성
이재명, 한국·미군 주둔 '미국 우선주의'에 도움 설득해야
|
안보가 경제발전을 위한 기본 상수인 대한민국의 지정학을 생각할 때, 최근 미국 조야에서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한층 묵직하게 다가온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1975년 베트남공화국(자유 월남) 패망, 2021년 아프가니스탄 함락 등 이들 역사의 명운을 결정적으로 가른 게 미군의 존재 여부였다.
주한미군의 유지는 한·미 국가 간 문제일 뿐 아니라 미국 행정부와 의회 간 미묘한 역학관계도 얽힌 복잡한 방정식이다. 관련 논의의 핵심 줄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 연방의회는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을 포함해 최근 수년 동안 NDAA를 초당적으로 통과시키면서 주한미군 병력을 현행 수준(약 2만8500명)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넣었다. 그런데 최고통수권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축 내지 철군을 결정할 권한이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아울러 대(對)중국 견제에 어디까지 관여할 것인지 등 주한미군 역할의 범위 재설정도 중대한 사안이다.
|
하원의원 3선을 거쳐 한국계 최초 연방 상원에 입성한 앤디 김 의원(민주)은 5월 28일(현지시간) 기자의 관련 질문에 하원 시절 NDAA 조항 작성에 관여한 경험을 들며 주한미군 문제는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직접 관련돼 있기에 의회와 충분히 논의하지 않고 내리는 대통령의 결정을 '월권'으로 봤다.
반면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은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인 점과 상충하는 이 법안이 대법원에서 합헌 해석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 못 한다고 말한다. 행정명령으로 강력한 권한을 발휘하는 트럼프 대통령인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의 판단 이전에 선조치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2017~2021년) 때 주한미군 철수를 여러 번 언급했다고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 등이 전한 바 있다. 트럼프의 동북아시아 정세 관련 인식이 그때보다 훨씬 진화했으리라 보지만, 측근들의 발언은 서로 다른 전망으로 연결될 만큼 엇갈린다.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등이 있는가 하면, 리처드 그레넬 북한·베네수엘라 특임 대사처럼 '미군 철수론자'로 통하는 인물도 있다.
|
지난해 7월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공식 인증한 공화당 밀워키 전당대회 당시 기자회견에선 "트럼프 외교정책은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이 공정하게 기여할 것을 요구한다. 세상에 회비 없이 시설을 이용하게 해 줄 클럽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충실한 발언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지정학·외교정책 담당 대표 겸 한국석좌는 정계 입문 훨씬 전인 35년 전부터 한국 내 지상군 철수 의사를 표명해 온 트럼프가 4500~5000명 규모로인 스트라이커 전투여단(SBCT)의 9개월씩 순환 배치에서 한국을 제외해 한반도에 1개 포병 여단과 기존 전투 부대만 남게 되고, 주한미군 규모가 2만명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상호관세가 그렇듯 주한미군 철수나 재배치 가능성 역시 정치적 압박 수단 내지 협상의 실마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민국과 주한미군이 얼마나 어떻게 도움 될지를 효과적으로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현실성과 의회의 견제를 고려할 때 감축 또는 철수는 실행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지만, 트럼프 행정부 핵심 관계자들과 김 의원 등의 평가가 엇갈린다면 이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
새로운 미국 국방전략(NDS) 구상의 중심인물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주한미군의 역할에 인도·태평양 지역 내 중국 억제가 포함된다고 본다.
콜비 차관은 지난해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미군 병력을 중국에 집중하도록 재편하면서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한 재래식 방어를 더 부담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5월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도 "주한미군은 중국,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5월 27일 중국·러시아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5월 15일 미국 육군협회(AUSA) 태평양지상군(LANPAC) 하와이 심포지엄에서도 "주한미군은 북한 격퇴뿐만 아니라 더 큰 인도·태평양 전략의 작은 부분으로서 역내 작전, 활동과 투자에까지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차 대표는 이재명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저항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등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고,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할 경우 대만 유사시 미국 측에 합류하는 것으로 보는 중국이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어려운 딜레마에 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김 의원은 북한의 위협을 여전히 심각하게 보며 그것이 주한미군의 본질적 구체적인 임무라고 짚는다. 다만 북한의 도발이 중국의 이익과 전혀 무관한 차원에서 이뤄질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 의원의 관점을 상반된 주한미국론으로 볼 필요는 없다.
◇ 이재명 대통령, 한국·미국 주둔 '미국 우선주의'에 도움 설득해야
결국 우리의 자주국방 의지가 주한미군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이 부분을 안정감 있게 관리하는 게 이재명 대통령의 첫 과제다. 트럼프가 1월 취임식 기념행사 때 전 세계 800개 이상의 미군기지 중 굳이 평택의 험프리 기지를 콕 찍어 영상통화를 나눈 것은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퍼포먼스였다.
그것에 지혜롭게 화답하는 게 이재명 대통령만의 임무일 리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