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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과 함께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변경되었다. 국가지정 민속마을에 사는 필자가 동네 주민들에게 '국가유산청'을 이야기하면 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문화재청'이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문화재'라는 명칭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게 박혀서인지 '국가유산'이라는 진일보한 단어가 여전히 어색하다.
어느 학자가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전(全)국토가 야외 박물관'이다.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을 가든, '국가유산' 안내판이 곳곳에 있고, 지역의 관광안내지도에도 '국가유산'이 표시돼 있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화재'는 재화적인 접근법으로 인해 그대로 보존·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사람들의 접근이 금기시됐고, 해당 '문화재'를 활용하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지역 활성화를 위해 국가유산을 활용하여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국가유산을 적극 활용하는 정책이 시작됐다.
그중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이 있는데, 지역의 잠자고 있던 국가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개발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업이다. 2025년 현재 '생생 국가유산 활용사업' 132건, '향교, 서원 국가유산 활용사업' 90건, '국가유산 야행사업' 47건,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사업' 40건, '고택종갓집 활용사업' 46건 도합 총 355건의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한 가지 이상의 국가유산 활용사업을 하고 있다.
위 5종류 국가유산 활용사업 중 특히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국가유산 야행사업'이다. 밤에 국가유산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사업이다. 2015년 서울 중구의 '정동 문화재 야행'이 시초가 된 야행사업은 지역의 문화재를 활용하여 야간콘텐츠를 만들고, 축제급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정책으로 평가받으며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오는 정책이 됐다.
서울, 수도권, 대도시와 달리 지역의 중소도시에는 밤에 즐길 수 있는 야간콘텐츠가 부족하다. 저녁 8시만 지나면 식당도 가게도 문을 닫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거리는 적막하다. 군 단위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밤에 즐길 거리가 없으니, 젊은 층이 밤에 즐길 문화가 없으니 인구유출이 가속화되고, '관계인구' 같은 말은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국가유산 야행을 하는 기간은 지역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군산, 진주, 여수 같은 중소도시만 해도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차고, 조명을 받은 문화유산들이 밝게 빛이 나며, 밤거리는 활기차다. 보은, 부여, 영덕 같은 군 단위 지역은 야행 기간 동안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몰리면서 오랜만에 사람구경을 비롯해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열려서 문화욕구를 충족할 기회가 된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아산시 송악면과 당진시 합덕읍 야행의 총괄감독을 하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져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지역의 문화유산이 야행 사업을 통해 다시금 조명되고, 지역의 역사적인 이야기가 발굴되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지역주민들이 구경꾼으로만 남는 게 안타까워 함께 야식 주전부리와 관람객을 위한 체험거리를 준비하면서 주민들도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를 깨닫는다. 2024년 당진 야행 동안 새벽 동틀녘 천주교 성지가 여럿 있는 버그내 순례길을 천주교 전문해설사와 함께 걸은 것은 사람들에게 말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독특한 체험, 색다른 콘텐츠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듯이, 지역에 산재한 국가유산을 꿰어서 지역활성화를 불러일으키는 보물로 만들어 보자!
/문화실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