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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래플러 등에 따르면 필리핀 상원은 전날 저녁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개시했다.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딸로, 필리핀 하원은 지난 2월 공금 유용·부정 축재·대통령 가족에 대한 위협 등의 혐의로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하원의 탄핵 소추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맡은 상원은 탄핵심판 첫날, 불과 몇 시간만에 탄핵 소추안을 하원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날 소집된 탄핵심판에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측근인 로날드 바토 델라 로사 상원의원이 탄핵 소추를 기각하자는 결의안을 발의했고, 논쟁 끝에 해당 안은 탄핵 소송을 하원으로 돌려보내자는 '중재안'에 18명의 상원의원들이 찬성 표를 던지며 결정된 것이다. 반대표를 던진 상원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상원의 "전례없는 결정"에 일부 상원의원들은 "(탄핵) 기각이 아니라 합헌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하원의 탄핵절차가 헌법에 부합했는지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라 밝혔다. 상원은 "탄핵심판은 공식적으로 계속 될 것"이라며 지난 5월 중간선거 이후 새롭게 꾸려질 하원이 탄핵을 추진할 "의지와 준비가 되어있을 때까지 하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새 하원은 7월 말 소집될 예정이다. 사라 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306명 중 215명의 찬성으로 가결한 19대 하원 대신 새로 꾸려지는 20대 하원이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상원의 이번 결정에 일부 전문가들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테 갓미탄 필리핀대학 법학부 교수는 "대법원만이 하원의 행위에 대한 합헌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헌법학자 파올로 타마세 필리핀대학 법학부 교수 역시 "상원은 탄핵사건에 대해 하원을 감독하거나 지시할 권한이 없다"며 "(환송은) 헌법적 구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하원과 상원은 탄핵 소추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더라도 헌법적으로는 평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상원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탄핵 소추안을 하원으로 넘기는 선례를 남겨 끝없는 핑퐁 게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사라 부통령 측은 이날 밤 성명을 통해 "탄핵 혐의가 근거 없다는 것을 밝힐 준비가 돼 있다"면서 "탄핵은 결코 정치적 반대자를 괴롭히거나 침묵하게 만들거나 제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라 부통령 측은 대법원에 별도의 탄핵소추안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사라 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완전히 기각된 것은 아니지만 사라 부통령 측에는 사실상의 '승리'란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상원의 결정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진 않았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이번 탄핵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인해왔지만, 이번 탄핵은 그의 '정치적 연합'들에 의해 진행됐다.
당초 마르코스 대통령과 사라 부통령은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함께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둘은 몇 몇 문제에서 이견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정치적 동맹'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사라 부통령의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 암살 협박과 사라 부통령에 대한 탄핵안 소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압송 등으로 둘의 관계는 극으로 치닫았다.
상원이 내리게 될 탄핵의 최종 결정은 향후 필리핀 정국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 단임제한으로 묶여 있는 마르코스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자를 양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라 부통령이 탄핵돼 앞으로 평생 공직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면 남은 임기와 향후 후계구도를 안정적으로 그려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라 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돌아올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