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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출범 후 4개월여 만에 미국의 구체적·적극적 대북 대화 소통에 대한 첫 정황이라는 점에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레빗의 답변 속에는 트럼프 집권 1기 때처럼 트럼프-김정은의 직접 대화를 통한 하향식 대북외교에 관심이 있다는 속내도 읽힌다. 두 정상은 이미 3차례 만났고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하면서 유대를 과시했다. 지난 1월 트럼프는 북한은 '핵보유국(nuclear power)'이고,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잘 지냈다"면서 친밀한 관계를 과시했다.
특히 트럼프의 '핵보유국' 표현이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즉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인정하고, 북한과 핵군축이나 핵동결 등 이른바 '스몰 딜(small deal)'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어 '완전한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방안은 매우 위험한 독소가 포함된 제안이다.
물론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완전한 북한 비핵화'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북한이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미국이 '요구 수준'을 낮춰 미·북 대화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의 친서 외교 재개 시도 정황은 미국이 먼저 북한에 다가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북한이 러시아와 관계강화에 치중하면서 미·북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전술적 변화로 보인다.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당장 미·북 대화가 실현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 김정은의 2019년 하노이 노딜의 앙금(trauma)이 남아있고, 북한-러시아 밀착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아직은 포기할 처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김정은은 자신을 대화상대로 인정한 트럼프의 구애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김정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과 미국-러시아 관계 변화 등을 지켜본 뒤 북한이 최상의 전략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시점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정은의 최상의 전략적 이익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에도 김정은은 트럼프의 개인 성향을 활용해 미·북 간 직접소통, 한미군사훈련 취소, 대북제재해제 등을 요구하면서 한국은 배제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뚜렷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트럼프의 입장에서 미·북 대화를 통해 일정한 외교적 성과를 얻고자 하는 조급함과 미국의 이재명 정부에 대한 미온적 환영 입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코리아 패싱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예견된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실용외교는 미국조야가 한미 간의 신뢰를 의심하게 하고, 이는 코리아 패싱의 한 요인으로 작용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트럼프의 '핵보유국' 발언으로 북핵 동결이나 핵군축을 염두에 둔 '스몰 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스몰 딜은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한의 핵자강을 암묵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안보에는 치명적 위협이며 북한이 핵을 앞세워 '적화흡수통일'을 지원할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코리아 패싱을 통한 '스몰 딜'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명확한 대북정책 원칙을 확정하고 다양한 미·북 협상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한미 간 신뢰 구축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조급한 남북대화·협력을 통해 코리아 패싱을 막아보려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기본노선은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한반도평화 구축'이다. 이 노선은 '대화와 협력'이 남북의 근원적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만능의 보검으로 여기고 '대화와 협력'에 매달린다. 이는 (소위) 진보정부의 한결같은 노선이다. 그러나 북한은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매몰차게 내뱉으면서 진보정부라고 봐주지 않는다. 바로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의 태도는 표변해 대남비방과 험담, 군사도발 위협이 그 사례다. 이는 진보정부(인사)가 하면 '대화·협력이 잘될 것'이라는 집단착각에서 벗어나라는 신호이다. 오히려 진보정부는 북한이 만든 대남전략의 유혹과 함정에서 벗어나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 방책을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지난 11일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대해 북한은 다음 날 대남 소음 방송을 중단했다. 김정은이 트럼프 편지를 거부했지만 방송 중단에 호응했다는 건 남북대화 복원에는 긍정적 신호다. 이를 남북관계 복원·호전의 신호로 여겨 성급히 대화·협력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남북의 대화·협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화·협력에 집착해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상누각의 '가짜 평화'가 아니라 북핵 위협이 사라진 '진짜 평화'가 구축된다. 정부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해 본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전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