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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극제에서 만나는 ‘관저의 100시간’, 재난과 권력 사이의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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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6. 18. 10:54

실제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논픽션 연극,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관객과 만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실화를 바탕으로, 대학로극장 쿼드 무대에서 펼쳐지는 100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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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그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선, 인류사에 길이 남을 복합적 재난이었다. 갑작스러운 재난 속에서 일본 정부는 과연 어떻게 움직였으며, 그 결정은 어떤 파장을 낳았을까. 연극 '관저의 100시간'은 그 시기 총리 관저 안팎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재난과 권력, 그리고 개인의 생존이라는 다층적인 물음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2025년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으로 초청된 이 작품은 20일부터 29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관객과 만난다.

작품은 아사히 신문 기자 출신의 기무라 히데아키가 집필한 동명의 르포르타주 '관저의 100시간'을 원작으로 한다. 기무라는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당시, 총리 관저에서 이루어진 모든 회의와 결정 과정을 치밀하게 취재해 분 단위로 기록했고, 그 결과는 단순한 보고를 넘어선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통찰로 읽혀왔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연극은 국가 시스템의 작동 방식, 혹은 그 작동의 부재를 조명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움직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연출을 맡은 오세혁은 이번 작업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사례지만, 그 안에는 전 세계 어디서든 되풀이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담겨 있습니다. 재난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그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와도 많은 부분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는 관저 내부에서 회의와 혼란이 벌어지는 사이, 재난을 겪는 시민 개개인의 삶 역시 동시에 전개되는 방식으로 극을 구성했다. "누군가가 단 몇 초 망설이는 사이, 다른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이 시간의 비대칭성과 감정의 간극을 무대 위에서 병렬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연출 의도는 작품의 서사 구조와 무대에도 깊이 반영되었다. 총리 관저, 피난 중인 가족, 그리고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살아가는 커플의 이야기가 각각 독립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면서도, 하나의 시간 속에 병치된다. 이로써 관객은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재난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덮쳐오는지를 입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배우진 또한 무대의 다층적인 구성에 맞게 다양한 연령대와 개성을 가진 인물들로 채워졌다. 관저 내부 인물로는 총리 역의 최영우를 중심으로, 이경미(관방장관), 김대곤(경제산업성대신), 김늘메(위기관리감), 송영미(서무직원), 유일한(원자력 안전 보안원장), 오현서(보안원 차장), 김건호(토오전력 기술명예직), 류동휘(원자력 안전 위원장)가 출연한다. 이들은 국가의 중심에서 재난을 다뤄야 하는 위치에 서 있지만, 책임 전가, 혼선, 무지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관객에게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국가 시스템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관저 밖의 인물들은 보다 일상적인 시선에서 재난을 바라본다. 박완규(야마다 쇼), 임찬미(야마다 미사키), 이아진(야마다 하나)으로 구성된 야마다 가족은 목장을 운영하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민이 된 인물들이다. 또한 커플 후미에와 미오 역의 류아벨, 김려은은 방사능 오염을 둘러싼 현실적 공포와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갈등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입장과 감정, 이해관계를 지닌 인물들이 각자의 선택과 고뇌를 드러내며 무대 위에서 충돌한다.

총리 역을 맡은 배우 최영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극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 사회를 향한 질문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압도적인 정보량과 복잡한 결정 구조에 놀랐다"며, "극 중 총리로서 책임져야 할 것들과,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관객이라면 어떤 장면에서 가장 고민하고, 어떤 인물에게 공감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덧붙이며, 연극이 지닌 참여적 성격에 대해 강조했다.

작품은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시, 서울연극창작센터, 그리고 ㈜뵈뵈의 후원을 받아 제작됐다. 2025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으로,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무대 언어로 풀어낸 점에서 선정 당시에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연출 오세혁은 "이번 작품이 단지 재난을 소재로 한 연극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공연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4시에 진행되며 러닝타임은 약 100분이다. 만 13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연극이라는 점에서, 이번 서울연극제를 찾는 관객들에게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난의 시간과 인간의 선택, 그리고 시스템의 한계를 무대에서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흥미로운 관극 경험이 될 것이다.

서울연극제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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