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용덕 대구대 명예교수가 최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펴낸 '식민지 근대화의 실상: "반일 종족주의" 비판'은 이영훈 등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시장경제학회 회원이자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인 저자가 같은 우파 시장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전용덕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해 분석한다. 1910~1920년은 조선회사령을 통한 '식민지배 네트워크' 구축 시기, 1920~1936년은 공업화를 중단하고 한인들을 농업에 집중시킨 시기, 1937~1945년은 군수공업화가 아닌 '전쟁 사회주의' 시기로 규정한다.
특히 1917-1919년 연간 물가상승률이 40%를 넘나들며 한인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이것이 고물가에 대한 불만과 민족적 동기가 맞물려 3·1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추진한 산미증식계획과 수리조합사업의 실체를 파헤친다. 겉으로는 한인 농민들의 복지 향상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인 청부업자들에게 각종 보조금을 주어 이득을 챙겨주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총독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선전·선동이 주목적이고 이득은 일본인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선정되고 설계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조선사설철도보조법, 사철매수, 주식시장 주가 조작, 화학비료 가격 인위 조정 등 모든 정책이 한인들의 복지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제 수혜자는 일본인들이었다.
저자가 가장 강력하게 반박하는 부분은 1937년 이후를 '군수공업화' 시기로 보는 시각이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관점에서 이 시기는 '전쟁 사회주의'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 사회주의란 전쟁을 목적으로 정부가 민간 자원을 대가를 지불하지 않거나 아주 낮은 대가로 소모해버리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전쟁에만 필요한 재화(포탄 등)를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민간의 삶은 오히려 더욱 어려워진다.
저자는 이 시기를 다시 1937~1940년(전쟁 사회주의 1기)과 1941~1945년(전쟁 사회주의 2기)로 구분하며, 2기에는 전쟁의 파괴성과 소모성이 커져 한반도 민간의 삶이 극한으로 치달았다고 분석한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이 수집·정리한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 그들의 논리를 뒤집는다. 김낙년의 '한국의 장기통계'에 따르면 1911~1940년 30년간 한반도의 광업·제조업 비중이 5.0%에서 17.5%로 늘었지만, 저자는 "한반도는 여전히 농업 중심 지역이었고 제조업 중에서는 군수공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통상의 공업화라고 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근대화'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치학자 정윤재의 정의를 인용해 △단위 민족의 정치적 독립 △공업화 △민주정을 근대성의 핵심으로 제시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군국 일본은 외견상 근대화를 이뤘음에도 천황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정치와 종교를 통합하고 타민족을 '신민'화함으로써 근대화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제는 한반도 한인의 자유를 정치적으로는 군국주의로 탄압했고, 경제적으로는 간섭주의와 사회주의로 생산성이 낮은 경제 체제를 강제했으며, 일본인에 비해 한인을 차별했기 때문에 식민지 한반도의 근대화를 오히려 방해했다"고 강조한다.
해방 80주년을 맞아 출간된 이 책은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경제학적 실증 분석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같은 우파 시장경제학자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역사 논쟁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