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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건 제1야당이 이런 대접을 받음에도 상황을 뒤집을 별다른 수단이 없다는 기막힌 현실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극심한 여대야소가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체제는 2028년 총선까지 최소 3년 동안 더 유지된다. 여기다 국민의힘은 심각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직면해 있다. 여러 갈래의 내부 갈등과 외침이 겹치면서 당이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당 일각에서 '혁신'을 요구하나 그보다는 '생존'이 먼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이 살아 있어야 치료를 할 것 아니냐는 현실론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된 87 헌법 체제 이후 최악이자 최약체 제1야당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곧 이재명 정부가 야당 복을 크게 누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노란봉투법, 상법, 양곡법, 방송법 등이 속속 처리돼도 야당은 속수무책이다. 소수 야당의 한계로 국회에서 여당의 법안 처리를 막지 못할 뿐 아니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거부권도 이재명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야권에선 이대로 3년이 가면 보수 진영이 구축한 국가 정체성마저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 견제 차원에서라도 정권이 야당 복을 누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제1야당이 제 모습을 찾아야 건강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서 나라 발전과 국민 생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자면 소수지만 투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야당으로 변신해야 하는데, 이는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오는 22일 출범하는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어디로 굴러갈지를 결정하게 된다. 현재 당권 경쟁자는 5명(김문수·안철수·장동혁·조경태·주진우)이다. 이 중 누가 이재명 정부의 야당 복을 뺏는 데 적임자일지가 관건이다.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끌어갈 최고위원 경선도 마찬가지다. 이를 선별하려면 현재 당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누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 한다.
국민의힘은 지금 크게 두 갈래의 '내우'와 세 건의 '외환'에 휩싸여 있다. 가장 큰 내부 갈등 요소는 찬탄-반탄 충돌이다. 이미 윤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된 마당인데, 여전히 탄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당권 경쟁에서도 핵심 쟁점이 된 이 문제를 과거 함몰이 아닌 미래지향적으로 풀 수 있는 후보가 대표 자리에 올라야 한다. 또 하나의 내부 문제는 '홍준표 리스크'다. 두 번의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연일 친정을 향해 독설을 퍼붇는다. 문제는 비난에 그치지 않고 특정 종교집단의 경선 개입설 등 휘발성 강한 이슈를 마구 투척하는 데 있다. 그의 입을 막으려면 본인의 흠결이 없어야 하는데 대표 경선 후보 중 누가 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내부의 문제는 새 지도부가 지혜를 발휘하면 단기간에 풀릴 수 있지만 밖으로부터의 공격은 웬만한 지도력으론 방어가 어렵다. 여권의 정국 운영구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의힘 앞에 놓인 세 건의 '외환'은 특검의 수사, 여당발(發) 위헌 정당 해산 위협, 한남동에 모였던 45명에 대한 징계 추진 등이다. 내부의 두 문제, 찬탄-반탄 갈등과 홍준표 리스크는 혁신으로 풀 수 있다. 그러나 세 갈래 외부 침공은 생존의 영역이다.
3대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와 인연 있는 국민의힘 현역 국회의원들을 향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명태균씨 공천개입 의혹의 윤상현, 건진법사 청탁 의혹의 권성동,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의혹의 김선교 의원 등이 특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비롯해 범여권 인사도 여럿이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권 의원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캐내는 등 파편도 튀고 있다. 특검의 남은 활동 기간 동안 어떤 일로 누가 다칠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검과 별개로 민주당은 정치적 이유로 국민의힘을 아예 소멸하겠다고 벼른다. 공수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한남동 관저에 모였던 45명에 대한 국회 징계안은 이미 제출됐다. 여당은 또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이라고 몰아세우며 헌재에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하겠다고 겁박한다. 이를 위해 관련법 개정안들도 제출한 상태다. 실제로 심판 청구가 이뤄지고 헌재가 받아들이면 국민의힘 소속 107명은 모두 의원직이 날아간다.
물론 특검 수사와 달리 민주당발(發) 위협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45명을 집단 제명 처리하려면 3분의 2 의석이 필요한데, 국민의힘 107명이 막을 수 있다. 또 국민의힘을 위헌 정당으로 지목해 공중분해 시키면 의회 기능 마비로 이재명 정부의 국정 운영이 큰 타격을 입으므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의 야당 복을 이어가기 위해 '내란 정당' 프레임을 거는 데는 유효한 수단들이어서 정청래 지도부는 필요할 때마다 써먹을 것이 분명하다. 내부 갈등과 달리 외부의 침공은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방어가 쉽지 않다. 한동훈 전 대표가 당권 도전을 포기한 이유도 그런 점을 고려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두 갈래 '내우'와 세 건의 '외환'으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제1야당이란 간판이 민망할 정도로 떨어져 있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의 내우외환을 잘 극복할 지도부가 탄생해 지지율이 오를 때 이재명 정부의 야당 복이 끝난다는 의미가 된다. 제1야당의 8·22 전당대회 결과는 한국의 정당정치 회복 여부를 가를 중요한 고비로 다가왔다.
송국건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