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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미국과의 관세 타결 이후 신문과 방송들이 비록 많은 양보를 했어도 천만다행이라는 평가를 해주니 이재명 정부로서는 한숨을 돌렸겠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당히 복잡한 셈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농산물과 쇠고기 문제만 하더라도 지켰다는 우리 정부 협상 팀의 이야기와 개방할 것이라는 미 정부 대변인의 발표가 달라서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설왕설래하고 있다. 이런 경우 힘이 약한 쪽이 국민을 달래고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성과를 조금 비틀게 되고 힘이 있는 쪽은 굳이 성과가 있는데 과장할 필요가 없는 게 보통이다. 시간이 있었음에도 문서 협정서도 만들지 않고 급히 발표한 것도 미심쩍다.
◇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전략 대결
- 트럼프의 전략: 약점 포착과 윤리적 타격의 교란전
도널드 트럼프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이미 전장을 설계하는 교활한 협상가다. 그는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도덕적 프레임으로 포장하여 국제 여론전과 국내정치의 균열을 동시에 공략하는 방식으로 일관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는 법률적으로 탄압하는 대신 "대통령 자격이 합당하고 공정한가?"라는 도덕적 일갈로 치명타를 가했다. 이는 내정간섭이라 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한국 유권자에게는 준엄한 경고로, 더불어민주당에는 도덕적 무장 해제로 작용한다.
이번 관세협상도 마찬가지다. 공식 문서 없이 구두로만 진행된 1차 합의는 "문서 없는 외교"라는 치명적인 실책으로 남는다. 트럼프는 이를 이용해 2차 회담에서 이재명 정부의 협상 신뢰성과 리더십을 흔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미국의 새로운 신보수주의(New Conservatism)적 가치질서, 즉 반중, 반(反)워키즘(Wokeism), 법치와 시장자본주의 복원을 강조하며 이재명 정부가 그 틀에 부합하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지적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무역협상이 아니라, 미국이 지향하는 새로운 글로벌 가치체계로의 '순응'을 요구하는 정치적 굴복 강요를 뜻한다.
◇ 이재명 정부의 협상 기반: 취약한 정당성, 제한된 전략
이재명 정부는 초기부터 세 가지 구조적 아킬레스건을 안고 출범했다. 첫째, 강력한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 체제가 작동 중인 대한민국은 좌파 포퓰리즘이 일방적으로 지배하기 어려운 구조다. 둘째, 이재명 대통령 개인은 이념형 좌파가 아니라 기회주의적 실용주의자이며, 정권 유지에 필요한 카드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정치인이다. 셋째, 본인의 형사적 사안과 정치적 원죄가 존재한다는 점은 외교 무대에서 항상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이 제시하는 '새로운 룰'을 따라야 하면서도 국내 지지기반과의 충돌을 피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이번 정상회담 역시 백악관의 요청이자 호출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회담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불안정성이 노출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준비한 다층적 협상 프레임, 즉 농축산물 시장 개방, 반도체·바이오 미국 이전, 방위비 분담금 증가, 주한미군 전략조정, 법치주의 이행 등의 의제를 다층적으로 다루는 프레임에 이재명 정부가 실질적으로 방어할 카드가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 향후 대책: 이념을 넘어선 국가전략 수립이 시급
이재명 정부가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치적 술수나 임시방편을 넘어, 대한민국이 글로벌 전략 판에서 어떤 톱니바퀴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설계해야 한다. 미국의 신질서 구상에 일정 부분 협조하되, 국가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조건부 동맹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략적 방향이 요구된다.
- 전략산업의 국외이전 방지: 반도체, 조선, 바이오, 원전 등의 핵심 산업은 미국과의 협력을 조건으로 하되, 핵심 기술의 국외 이전이나 연구소 유출은 막아야 한다. 기술이전을 포함한 상호협력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 방위비 및 주한미군 전략 전환 협상력 강화: 방위비 분담 문제는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균형추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핵에서 대중 견제로 확대되는 만큼, 한국은 전략적 기여도에 따라 방위비 논리를 반전시킬 수 있다. 이 주장은 이 대통령이 평소에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과 위상이 변경된다면 이것은 협상력이 있는 카드다.
- 법치 회복과 국제 신뢰 제고: 트럼프가 강조하는 법치와 윤리의 기준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내적으로는 사법시스템 존중을 실천하고 외적으로는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협상력의 기반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재판과 내란 관련 문제와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라는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답변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결국 트럼프는 이념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실리의 접점에서 동맹을 재조정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그 흐름을 읽지 못하면, 단지 한미관계에서의 실패뿐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 전략의 좌초를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 진로를 좌우할 분수령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서려면 '정파'가 아니라 '전략'이 앞서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