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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유통에서는 이미 당일이나 다음 날 배송과 같은 빠른 서비스가 중요한 경쟁력이 됐다. 2024년 한국소비자원 이커머스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의 70% 이상이 배송 속도를 온라인 구매 결정의 핵심 기준으로 꼽았다. 쿠팡이나 아마존 같은 온라인 기업들은 AI 기반의 물류 시스템과 실시간 재고 관리를 통해 배송 속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시간 민감성은 오프라인 매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프라인에서도 소비자들은 원하는 상품을 즉시 구입할 수 없으면 즉각적으로 다른 매장이나 채널을 찾는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운영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고, 빠른 재고 회전과 효율적인 자산 관리를 통해 시간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최근 추진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확대 법안은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의 노력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은 기존 자율적으로 정하던 휴업일을 공휴일로 강제화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의무 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했지만, 다시 공휴일 휴업 강제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매장 운영과 비용 관리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미 유통산업발전법으로 인해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이 휴무일인데, 공휴일까지 휴업일로 강제된다면 매출 감소뿐 아니라 설비와 인력의 비효율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기업은 임대료와 인건비, 설비 유지비 등 고정비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영업시간이 줄면 단위당 비용이 증가한다. 유통업은 운영 규모가 커질수록 단위 비용이 감소하는 규모의 경제(Scale Economy)나, 한정된 공간에서 자원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밀도의 경제(Density Economy) 효과를 누려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주말 휴업이 늘어나면 매출 감소는 물론, 온·오프라인 간 상품 이동이 가장 활발한 주말 동안 재고 관리에 어려움이 생겨 옴니채널 전략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옴니채널 전략은 여러 채널에서 고객이 일관된 쇼핑 경험을 느끼게 하는 전략으로, 오프라인 운영시간의 제한은 온라인 배송 대응력과 재고 관리 효율성을 떨어뜨려 전략의 성과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 롯데마트의 스마트픽이나 이마트의 쓱배송 같은 서비스는 온라인의 빠른 배송과 경쟁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주말 영업 제한이 지속되면 차별화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유통기업들이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외부 규제 환경에서도 민첩성과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게 필수다. 경영학에서는 급격한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능력을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y)'이라 부른다. 동적 역량이란 시장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량을 빠르게 만들어내거나 기존 역량을 재조정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유통기업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한 정확한 수요 예측이나 AI를 활용한 재고 관리 최적화 등을 통해 이런 역량을 키워가고 있지만, 지나친 규제는 이러한 혁신적 대응 능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규제가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졌다고 해도, 과도하면 유통산업의 혁신 동력을 꺾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업계에서는 현실적 대안으로 평일 휴업 전환이나 지역별 자율성 확대 등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유통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업계가 적극 협력하여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유통기업 경쟁력을 높여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할 시점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노은직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겸임교수
※ 노은직 교수는…
성균관대 농업경제학 학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농업경제학 석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농업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aSSIST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소비자와 유통', '소비자중심경영'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금융과 유통의 융합 전략 및 마케팅을 주요 연구 분야로 KCI 논문을 출판했다. 이전에는 홈쇼핑네트워크 SHOP TV (필리핀) 대표이사, GS리테일 홈쇼핑부문 해외기획팀장, 삼성생명·IBK기업은행·우리금융지주사 기획팀에서 근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