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금융 전략적 조율로 시너지 '업'
예산권 빠져 추진 동력 약화 우려도
"재정상황 크게 달라질 부분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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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경제부처 개편 추진…기재부 중심 체계에 '손질' 예고
이재명 정부가 17년 만에 경제부처 조직 개편에 나선다. 현행 체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단행된 조직개편 이후 큰 틀의 변화 없이 유지돼 왔다. 당시 정부는 기획예산처와 재경부를 통합해 기재부를 신설하고, 금융정책 기능은 분리해 금융위로 이관했다. 예산과 정책 기능의 분리가 정책조정력 약화, 재정건전성 통제 미비 등 문제를 낳았다는 판단에서다. 개편 이후 기재부는 예산·경제정책·국제금융을, 금융위는 금융정책 수립을,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 집행을 맡는 구조가 이어졌다. 이 같은 기재부 중심의 경제정책 기능 통합은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권한 집중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경제부처 간 역할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을 추진 중이다.
◇예산권 총리실 산하 이관…재정부, 경제·금융정책 전담
7일 국정기획위원회 등에 따르면 현행 기재부의 예산 편성 권한은 총리실 산하 장관급 기구인 기획예산처로 이관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대통령실 직속 설치 방안도 거론됐지만 헌법상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배제됐다. 기획예산처는 국가 재정 배분은 물론 저출생·기후위기·산업구조 개편 등 중장기 전략 과제를 총괄하는 재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예산권은 경제뿐만 아니라 복지, 환경 등 국가 전반에 대한 조정 기능을 가질 수 있다"면서 "기획예산처가 출범하면 기존 경제 문제에 더해 저출산, 사회불평등, 고용창출 등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기재부는 재경부로 이름을 바꾸고 △거시경제 △재정 △세제 등 경제정책 기능에 집중한다. 이와 함께 금융위가 맡고 있는 국내 금융정책 기능도 재경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새롭게 출범할 재경부가 국내외 금융정책을 아우르게 되면, 경기 대응 과정에서 재정과 금융 간 전략적 조율이 보다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교수는 "국내 금융과 국제 금융이 같은 부처에서 관리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며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재정건전성 논란에…전문가 "우려할 이유 없다"
예산 편성 권한이 국무총리실로 넘어갈 경우 정치적 판단이 재정 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재정건전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999년 국무총리 소속 기획예산처가 신설되면서 예산과 정책기능의 분리 구조와 관련해 재정건전성에 대한 통제 취약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크게 우려할 부분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획예산처가 방만하게 예산을 운용해서 재정여건이 악화하면 책임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면서 "현 체제에서도 거대 여당이 예산 편성과 지출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조직 개편이 이뤄져도 재정 상황이 크게 달라질 부분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도 "조직 개편에 따른 재정건전성을 우려할 이유는 없다"며 "기획예산처 수장은 경제 성장도 고려해야 하지만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건전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 기능이 빠진 재경부는 과거 사례처럼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과거 기획예산처-재경부 체제에서는 예산권이 뒷받침되지 않은 재경부의 정책 조정 기능이 저하됐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예산기능을 분리할 경우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예산권이 강력한 부처 간 조정 수단이었던 만큼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예전처럼 예산을 앞세워 다른 부처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사실과 논리에 기반해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 기능이 분리되더라도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