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생산 차질속 수익성 악화 직격탄
한미정상회담 나흘 만에 '발등의 불'
관세정책 급변속 반도체 불확실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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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미국 연방관보와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프로그램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VEU는 별도의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적 지위다. 현재 인텔공장은 SK하이닉스가 100% 인수한 상태라 사실상 이번 발표의 대상은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생산시설'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3년 VEU 지위를 받았지만, 앞으로는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하려면 미국 정부로부터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조치는 120일간의 유예 기간이 적용돼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VEU 제외 기업으로 직접 거론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지 생산시설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와 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다롄과 우시, 충칭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D램, 패키징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 다롄과 우시 공장은 전체 낸드플래시와 D램 생산량의 40%, 20%를 각각 차지하는 등 핵심 생산시설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업계에선 미국 정부의 규제로 첨단 공정 전환이 어려워질 경우 현지 매출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 사업보고서를 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향 매출은 각각 28조7918억원, 7조36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감소세를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급격한 성장세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VEU 제외 조치는 이 같은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정부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반도체 업계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관세 리스크도 상존하는 만큼 보다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7월 우리 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율을 15%로 확정했지만, 반도체 품목 관세와 관련해선 100%라는 가이드라인만 내놓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미국에 공장을 지을 경우 이를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찍부터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기지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미국의 관세 정책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양사는 미국 정부의 VEU 제외 조치와 관련해 아직까지 별다른 입장 없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31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이 같은 내용에 대해선 "일 열심히 해야죠"라고 짧게 답했다. 일각에선 120일의 유예 기간을 둔 점에 비춰 우리 정부나 국내 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유도할 심산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도 사실상 반도체 우군격인 우리 기업들을 대놓고 통제하는 규제를 펼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양국 협상을 통해 충분히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