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배상 책임은 인정 안해…"고의·과실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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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소송이 이어졌다. 16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줄지어 제기됐고, 수백명 규모의 집단소송도 포함됐다. 1심은 소비자들의 패배였다.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할 시기에는 라돈과 같은 방사성 물질을 규제하는 법령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상황은 항소심에서부터 달라졌다. 지난달 21일, 소비자 849명과 30명이 각각 대진침대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고 소비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진침대가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함에 있어 방사성 물질인 모나자이트를 원료로 사용하면서도 그 안전성 여부를 확인하거나 방사선 방출로 인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만연히 안전성을 결여한 매트리스를 제조·판매한 과실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피해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피폭에 따른 불안과 정신적 고통을 위자료로 산정할 수 있다는 이례적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원고 등은 매트리스를 수년간 사용해오면서 방사능 노출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경고도 받지 못한 상태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침실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생활방사선법에서 정한 가공제품의 안전기준(연간 피폭선량 1mSv)을 초과한 방사능 피폭(최대 연간 피폭선량 13mSv)을 당했다"며 "원고 등이 이 같은 부당한 피폭을 당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리라는 점은 경험칙상 분명하다. 이에 대진침대는 원고 등에게 매트리스 가격 상당의 손해에 더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까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대법원에서도 대진침대의 배상 책임이 잇따라 확정됐다. 지난 7월 대법원은 "현실적인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사회통념에 비춰 피해자가 정신상 고통을 입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위자료를 인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대진침대 측은 이 사건에서 줄곧 "당시 법령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생활제품에 방사성 물질이 사용되는 것에 대한 법적 규제가 미비했던 것은 사실이다. 2019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 개정된 후에야 라돈 등이 함유된 물질을 사용한 매트리스의 제조가 금지됐다. 그러나 질병 발생의 여부보다 '사회통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 확정 판결의 근거로 등장한 것은 법원이 단순한 법률상 과실 유무보다 사회적 신뢰와 기업윤리에 무게를 뒀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들을 대리한 로덱법률사무소의 김태현 변호사는 "현대사회에서 물질은 계속해서 개발되고, 법령은 당연히 뒤늦게 따라오는 법"이라며 "게다가 모나자이트는 당시에도 너무 유명한 방사능 물질이었고, 항소심 판결에서도 일반인의 인식 수준에 비춰 유해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물질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매트리스에 모나자이트를 도포한 것은 법령 위반이라고 판단해 즉시 수거 명령을 내린 이상 절대 패소할 수가 없는 사건"이라며 "대진침대 측에서 1년에 CT를 10번만 찍어도 피폭 수준이 대진침대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는데 CT는 의학적 목적으로 이에 상응하는 이익이 있지만 이 사건은 아무런 이익도 없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피폭이다. 이는 ICRP(국제 방사선 방호 위원회) 선언문에도 나와있는 부당한 피폭"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국가 책임의 문턱이 여전히 높았다는 건 아쉬움이다. 법원은 두 사건 모두 국가 배상 책임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2조 1항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대한민국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료물질 유통현황 관리의무나 이 사건 매트리스 등 가공제품에 대한 조사계획 수립 및 시행의무를 소홀히 했다거나 조사결과 가공제품이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음이 확인됐음에도 관련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등 생활방사선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령의 '미비'나 '부재'가 법정에서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규제가 부실했고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국가의 책임 범위를 넓히는 데 인색한 법원이 책임을 오롯이 기업에만 떠넘겼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진침대 측 대리인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대부분의 배상 지급이 완료된 상태다. 현재 대진침대에 남아있는 직원이 거의 없고, 더이상 어떠한 생산·판매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시대적·사회적,·과학적 환경들이 많이 변했고, 그 과정에서 대진침대 측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