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중국에선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을 거친 후에야 중앙집권적 통일 제국이 출현했다. 시황제(始皇帝)가 세운 진(秦, 기원전 221~206) 제국은 불과 15년 만에 무너졌으나 곧이어 등장한 한(漢) 제국은 400년 이상 존속하면서 중화 제국의 원형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서 중화 제국의 이념적 기초가 닦이고, 제도적 기틀이 짜이고, 통치의 지혜가 축적됐다. 바로 그 중화 제국의 질서가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됐다.
2000여 년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그레코-로마 고전 문명 역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전쟁을 거치면서 완성되었다. 그리스를 통일하고 북아프리카를 복속시킨 후 서아시아를 지나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격했던 알렉산드로스는 거대한 세계 제국을 건설했으나 그가 죽자 허망하게 여러 왕국으로 분열됐다. 알렉산드로스가 품었던 세계 제국의 꿈은 300여 년이 지나 이탈리아반도에서 일어난 로마에 의해 실현됐다.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제국에서 로마 제국의 형성까지 350여 년의 세월 동안 오늘날 서양 문명의 기초가 된 그레코-로마 문명이 완성되었다. 그 누구도 그레코-로마 문명의 역사적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근대 서양 문명의 기초가 된 민주주의, 공화정, 법치제도, 입헌주의, 자연과학, 서양철학 등은 바로 그레코-로마 문명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진·한 제국의 출현은 중화 문명의 지역적 확산과 문화적 보편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레코-로마 문명은 서양 문명의 모태로 작용했다. 지난 2000여 년 인류사의 양대 축이었던 이 두 문명은 모두 거대한 통일 제국의 질서 아래서 활짝 꽃피었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언어, 다채로운 습속을 아우르는 거대한 세계 제국의 출현은 장기적 평화, 원거리 무역, 사상·문화적 교류 등을 가능하게 했고, 인류 문명의 보편적 확산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인류사의 발전에서 제국의 형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중대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왜 오늘날 지구인들 대다수가 제국을 혐오하고 민족국가를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제국이 민족국가보다 더 위험한가?
오늘날 실제로 많은 지구인은 '제국(帝國, empire)'이란 낱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만큼 '반제(反帝)'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다. 왜일까? 우선 제국의 형성 과정에서 정복 전쟁, 경제적 수탈, 식민화 정책 등 어두운 역사가 펼쳐졌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20세기 이래 '민족국가(nation-state)'가 생겨나면서 세계 각국에서 정치적 민족주의(political nationalism)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제국의 역사가 실제보다 더욱 어둡게 왜곡된 혐의가 짙다.
제국이란 대규모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해 다문화, 다언어, 다민족의 여러 지역을 병합하고 복속시켜 지배하는 중앙집권적 통치 시스템을 이른다. 반대로 민족국가란 대개 동일한 언어, 비슷한 습속, 공동의 가치를 갖는 종족 집단이 하나의 나라를 이뤄야 한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국가를 이른다. 개념적으로 민족국가는 다민족, 다인종을 포괄하는 제국의 질서와는 상반되는 정치 체제이지만, 20세기 전반기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는 민족국가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제국적 팽창주의를 표방했다. 표면상 물과 불처럼 상극 관계로 보이지만, 복잡한 역사의 현실에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공격적 정복의 이데올로기로 표출된 사례가 많다.
|
국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라고 일갈했다. 세계 제국이 지배하던 19세기는 오히려 대규모의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살던 '제국의 시대'가 민족 단위로 쪼개진 '민족의 시대'보다 오히려 평화롭고 안전했다는 지적이다. 그의 관찰은 지구인의 통념을 의심하게 한다. 제국이 민족국가보다 더 위험한가? 제국이 인간의 삶을 더 고단하고 궁핍하게 만들었던가?
◇ 로마 제국의 군사적 기원
중화 제국은 오랜 역사를 갖는 여러 지역을 하나의 정부 아래 병합시켜 전일적으로 다스렸던 통일 왕조였다. 거시적 관점에서 로마 제국의 형성 과정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사 정벌로 여러 도시국가가 병합돼 영토국가가 되고, 영토국가들이 다시 합쳐져서 더 큰 규모의 국가로 끊임없이 확장해 갔다.
기원전 5세기 이후 로마는 왕정을 물리치고 원로원, 집정관, 호민관이 팽팽하게 맞서며 상호 견제의 세력 관계를 이어갔던 공화정의 전통을 이어갔다. 당시 로마는 작게는 2만~4만, 많게는 5만~7만 정도의 인구가 모여 살던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그렇게 작은 규모의 공화정이었던 로마는 왜 그토록 많은 자국민을 죽여가면서까지 숱한 정벌 전쟁을 계속해야만 했을까? 로마인들은 초기에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로마를 지켜야 한다는 수세적 방어의 논리를 펼쳤으나 곧 로마의 영광을 위해서 군사 원정에 나서야 한다는 적극적 공격의 논리를 계발했다. 정복 전쟁에서 승리해 영토를 넓히면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얻고, 전리품을 빼앗고, 조공과 노예를 확보하게 된다는 경제적 동기도 있었다. 실제로 로마는 정복 전쟁을 통해 상상을 절하는 막대한 부를 거둘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침략과 정벌의 과정을 거쳐서야 로마는 비좁은 이탈리아반도를 병합하고, 나아가 지중해 연안을 벗어나 중동, 아나톨리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중앙 유럽을 지나 영국까지 정복하여 명실공히 세계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그렇게 수많은 군사 정벌을 거쳐 이미 거대한 국가로 성장한 로마는 여전히 원로원과 집정관이 상호 견제하는 공화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국이란 말 그대로 황제의 나라, 곧 황제 지배 체제를 이르지만, 로마는 황제가 없이 공화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정복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로마는 공화정을 버리고 제정(帝政)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제국의 지배를 위해선 강력한 권력의 구심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로마에서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확립되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짚어보자.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