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와 몸짓이 교차하며 빚어낸 상징의 긴장
동시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자유와 속박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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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인물들의 대사가 터져 나오며 이야기는 속도를 얻는다. 상황 설명이나 장식적인 장면으로 길을 여는 대신, '공공공공'은 불확실한 소리의 여운 위에서 곧바로 대사로 뛰어든다. 화려한 장식은 배제되고, 건조한 언어가 무대를 지배한다. 그 담백함 속에서 오히려 주제는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라는 반복된 물음은 이후 전개를 관통하며 연극 전체의 화두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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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브로커 '317', 별칭 허수는 탐욕과 교활한 꾀로 점철된 인물로, 돈이 세상의 질서를 지배한다는 냉혹한 신념을 내세우며 감옥 안에서도 계산과 술수를 멈추지 않는다. 감옥의 질서를 쥐고 흔드는 간수 '북두칠성'은 권위와 통제를 앞세워 체제를 유지하지만, 동시에 권력이 지닌 부패와 모순을 드러내는 얼굴로 그려진다. 여기에 '하얀새'와 '검은새'가 언어 바깥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해, 말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극의 바깥에서 긴장과 은유를 밀고 들어온다.
관객의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들은 단순한 감옥의 풍경을 넘어섰다.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직장과 가족, 돈과 이념, 사랑과 증오라는 이름으로 재생산되는 또 다른 감옥을 비추는 은유다. 이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제도, 성과 중심으로 압박하는 직장 문화, 가족 안에서조차 벗어나기 힘든 기대와 억압, 정치와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분열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관계가 또 다른 감옥처럼 느껴진다.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는 때로는 현실의 언어처럼 생생하고, 때로는 시적 비유로 치환되어 객석을 파고든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각자의 궤도를 따라 흐르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목소리가 겹치고 충돌하며 복잡한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그 순간 감옥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오늘을 은유하는 상징적 무대로 변모한다. 관객은 무대 위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자기 삶을 비추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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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대사와 침묵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과 해방, 고통과 욕망이 부딪히는 파동을 형성한다. 때로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겹쳐져 한꺼번에 쏟아지고, 때로는 침묵이 무대를 잠식하며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객석에서는 숨소리조차 줄어든 순간들이 이어졌고, 관객은 이 진폭 속에서 자신이 갇혀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떠올리게 된다. 연극은 바로 그 지점에서 현실과 무대를 겹쳐 보게 만든다.
작가 주수자는 시와 소설, 희곡을 넘나들며 언어와 이미지를 변주해온 문인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오랜 해외 유학을 거치며 예술적 감각을 넓혔고, 2001년 소설 '한국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빗소리 몽환도'와 '복제인간 1001'이 대학로 무대에서 공연되며 주목받았고, 'Night Picture of Rain Sound'와 'ZERO 공공공공'은 해외에서도 출간돼 호평을 얻었다. 2025년 장편소설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 무대에서도 서정성과 사회 비판적 시선을 교차시켜 시적 긴장과 서사적 밀도를 동시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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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결국 묻는다. "당신은 삶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포로입니까." 막이 내린 뒤 잠시 침묵이 흐른 객석의 분위기는, 그 질문이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관객을 따라붙는 울림임을 증명했다. 무대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물음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연극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만든다. 바로 이 점에서 '공공공공'은 단순한 시대극이나 사회극을 넘어선다. 그것은 치열한 현실 인식이 담긴 보고서이자,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향한 서정적 시선이 담긴 시적 텍스트다.
드림시어터 소극장에서 만난 이번 무대는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알 수 없는 소리로 시작해 침묵과 대사의 반복으로 쌓아올린 서사는, 결국 관객 각자의 삶에 겹쳐져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감옥을 닮은 현실에서 자유를 향한 사유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공공공공'은 그 여정의 불씨를 다시금 우리 앞에 내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