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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통 중고품을 처분할 때 당근마켓, 중고나라 같은 플랫폼부터 열게 된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생기기 전에는 종이로 배포되는 생활정보지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거래 당사자들이 직접 벽보를 붙이기도 했다. 지금은 거래 정보가 휴대폰 안으로 들어와 이 불편함은 사라졌고 중고거래는 활성화됐다. 경제학자들은 일어날 수 있는 거래가 일어나지 못하여 사회 전체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하는 상태를 '경제적 순손실'이라 부른다. 어떠한 제약 때문에 거래자들이 사고 싶은데 사지 못하거나, 팔고 싶은데 팔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중고거래 플랫폼은 IT기술로 공간적 제약을 해소함으로써 경제적 순손실을 개선한 사례다.
이번 외환시장 개선 방안은 제도를 개혁하여 경제적 순손실을 해소하는 정책이어서 의미가 크다. 개선 방안은 외환거래와 한국은행 원화 결제망의 24시간 연장을 골자로 한다. 이 조치는 낮에만 문을 여는 동네 슈퍼마켓을 24시간 편의점으로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외환시장에 야간 거래를 중단 없이 허용함으로써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외환제도는 상당히 경직적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급하게 원화를 거래하고 싶어도 인가된 외국환 중개회사를 통한 역내 거래만 인정되고, 거래도 오전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가능하다. 또한 오후 5시 반 이후 발생한 원화 결제는 한국은행 결제망에 당일 처리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외환 거래자들은 차액결제선물환(NDF, Non-Deliverable Forward)을 이용하거나 아예 원화 거래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NDF란 원화를 외국환과 직접 교환하는 것이 어려울 때 미 달러를 거쳐 교환하는 거래 방식을 말한다.)
정부가 제도를 이렇게 운영해 온 가장 큰 이유는 거래시간을 제한할 때 환율관리 효과성이 높아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에게는 일견 타당한 논리다. 예를 들어, 환율이 급등할 때 정부는 정규시장 중 외환보유고에 확보된 미 달러(원화)를 매도(매수)하여 환율을 진정시키고, 정규시장 후에는 외환시장이 사실상 거래정지 상태로 전환되므로 환율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우리 환율은 우리가 정한다는 '환율 주권론'도 외환규제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미 국가 간 자본 이동은 자유롭고 금융기법은 고도화되었다. 전 세계 자본의 저수지인 국제금융시장과 우리 시장을 연결한 수로를 정해진 시간에만 여닫는다고 환율관리가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직적인 외환제도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제이며, 우리나라를 규제의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이므로 적극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환 거래시간이 자유화되면 다음과 같은 후생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유동성 확대다. 주식에 빗대면 미 달러는 휴대폰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는 상장주식과 같고 원화는 당사자끼리 거래하는 비상장주식과 비슷하다. 금융기관은 환율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으로 위험을 관리하는데, 현재는 거래시간 제한으로 원화 유동성이 부족해 극히 표준화된 상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거래자들이 높은 위험관리 비용을 치르고 있다. 거래 자유화는 금융기관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둘째, 원화 국채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다. 미 달러 국채가 미국 금융을 대표하듯 원화 국채도 우리의 국가대표 증권이다. 하지만 현재 원화 국채 거래는 역내에서만 가능하다. 외환거래가 자유화되면 역외 거래자들도 원화 국채를 활용할 여지가 커지므로 우리 국채가 재평가될 수 있다.
셋째, 가격발견기능 확대로 환율 변동성이 완화된다. 지금은 야간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누적된 경제충격이 개장 직후 우리 환율에 한 번에 반영되어 환율 변동성을 증폭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24시간 거래가 허용되면 환율이 야간에도 골고루 조정될 수 있어 불필요한 변동성이 경감될 수 있다.
외환거래시간 자유화가 관심을 받은 김에 비거주자 원화결제 완전자유화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현재는 외국인, 해외동포 등 비거주자의 원화 결제는 자본거래 규제 때문에 사실상 무용하다. 외국인 투자자가 원화를 대량으로 융통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통화를 선택하게 된다. 역시 경직적인 외환제도가 원화 거래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은 달러 베이스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여 미 달러의 지위를 공고화하고 있고, BRICS 국가(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는 최근 중국 위안화를 대외 결제 통화로 활용하고 있다. 원화의 국제통화화는 요원하다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규제에 얽매여 원화의 유용성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경제후생 개선과 원화 지위 확대를 위한 외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지인엽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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