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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채널뉴스아시아(CNA)는 야당인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PDI-P)이 의회 최대 의석(110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여당 연정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으로서의 제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PDI-P는 프라보워 정부 출범 이후 스스로를 야당이 아닌 균형추 정당(balancing party)으로 규정했다. 이는 과거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시절(2004~2014) 강력한 야당의 면모를 보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문제는 이 '균형추' 역할이 실제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거의 포기한 '무력한 야당'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3월 통과된 군법 개정을 들 수 있다. 현역 군인이 14개 정부 부처 및 기관의 민간직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 법안은 시민 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지만, PDI-P를 포함한 의회는 심의 한 달 만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또 지난 8~9월 전국적인 유혈 시위를 촉발했던 국회의원들의 '황제 수당(월급 외 월 5000만 루피아 주택 수당 등)' 논란 당시에도 PDI-P는 정부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배달 기사가 사망하는 등 최소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PDI-P 정치인들은 눈에 띄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파자자란 대학교(UNPAD)의 정치분석가 쿤토 아디 위보워는 "이제 입법부는 정부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 같다"며 "의회가 프라보워 내각의 한 부처처럼 되어버렸다는 농담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PDI-P가 이처럼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PDI-P의 창립자이자 총재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과 프라보워 대통령의 오랜 관계다. 두 사람은 2009년 대선에서 각각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로 손을 잡고 출마했던 사이다. 비록 당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이후에도 두 사람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2014년 대선에서 PDI-P 소속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이 프라보워를 꺾었을 때도 메가와티와 프라보워의 개인적인 관계는 이어졌다.
이 관계는 2023년 말 프라보워가 조코위의 아들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틀어졌다. PDI-P는 조코위 부자(父子)를 당에서 제명했지만, 프라보워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그는 끊임없이 PDI-P를 자신의 내각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결국 지난 4월 프라보워 대통령은 메가와티의 자택을 찾아 1년여 만에 단독 회동을 가졌고, 이후 PDI-P의 태도는 눈에 띄게 유화적으로 변했다. 메가와티의 딸이자 현 국회의장인 푸안 마하라니 역시 정부와의 협조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프라보워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도 PDI-P의 운신 폭을 좁히는 요인이다. 한 정치 분석가는 "프라보워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국민들의 눈에 똑같이 인기 있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약속했기 때문"이라며 "이것이 많은 정치인들이 프라보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를 꺼리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프라보워 대통령은 지난 8월, 2019년 선거관리위원 뇌물 사건으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던 PDI-P 사무총장 하스토 크리스티얀토에게 사면을 단행하며 PDI-P에 '선물'을 안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회 내 견제 기능이 사실상 실종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해소되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분출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쿤토 아디 위보워 분석가는 "의회 내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민들의 목소리는 거리에서 길을 찾게 될 것"이라면서 "이번 시위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PDI-P가 2029년 대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거나 프라보워의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다시 야당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그때까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