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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여왕이 된 기분”…72세 어르신의 떨리는 설렘, 종로에서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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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숙 기자 | 유혜지 인턴 기자

승인 : 2025. 10. 22. 16:20

가을바람 속, 어르신들의 설레는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65세 이상만의 솔직당당한 만남…7쌍 이성친구, 3쌍 우정 탄생
종로 어르신 굿라이프 챌린지(2)
지난 21일 오후 종로구 돈화문 국악당에서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가 진행됐다. /종로구
"마음에 정해놓은 사람이 세 사람이야. 누굴 고를지 모르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 어르신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지난 21일 오후 종로구 돈화문 국악당. 이곳에선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진 어르신들의 새로운 인연이 꽃을 피웠다.

구두에 정장, 모자를 쓴 노년의 신사들과 화장하고 스카프를 맨 고운 어르신들. 며칠 새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도 이들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설렘이 어르신들을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한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이곳에선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솔직당당하게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동성친구도 사귈 수 있다.

행사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훈훈했다. 흥겨운 판소리 공연이 장내를 데우고, 우쿨렐레와 판소리 공연으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노랫소리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문밖에 멈춰 서서 미소를 지었다.

"혼기를 놓쳐 아직 싱글이에요. 모집하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나왔어요. 부끄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제가 이런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여왕이 된 것 같아요." 닉네임 '라일락'(72)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목소리에는 긴장과 함께 어딘가 설레는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한 참가자는 사전에 준비한 춤을 보여주며 강렬한 자기소개로 장내 분위기를 더욱 밝혔다.
종로굿라이프
한 참가자가 춤을 추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유혜지 인턴기자
"그냥 진실성 있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좋아요. 말이 너무 많은 건 싫어요." 여든한살의 수선화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이상형을 밝혔다. 그의 입가에는 한 점의 부끄러움과 많은 기대감이 묻어났다.

"편안한 분이 좋습니다. 외모는 보지 않습니다." 이상형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다람쥐(78)가 웃으며 답했다.

"서촌에서 왔어요. 로사는 세례명이고 친구 찾기라고 해서 친구 찾으러 왔어요. 이성이든 동성이든 열심히 눈 돌리고 있습니다." 로사(73)의 떨리는 목소리엔 이곳에 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만남의 결과는 의미 있었다. 7쌍의 이성친구가 탄생했고, 올해 처음 마련된 동성친구 프로그램 '친구하자'에서는 3쌍의 우정이 이어졌다.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어르신들의 교류 폭을 넓힌 뜻깊은 자리였다.

정문헌 종로구청장과 라도균 종로구 의회 의장도 참석해 어르신들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북돋았다.

정 구청장은 "100세 시대에 어르신들의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며 "구에서도 건강하고 즐겁게 사시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라 의장도 "전국 최초로 시작된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가 이제는 다른 구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행복한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종로 어르신 굿라이프 챌린지(1)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종로구
박지숙 기자
유혜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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