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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발전은 대학 교육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과거 지식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AI 기술 덕분에 누구나 언제든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새벽에도 학생들은 챗GPT나 Gemini와 같은 생성형 AI에게 질문을 던지고 교수보다 더 빠르고 명확한 답을 얻는다. 대학이 독점하던 지식의 권위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학은 과연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학문적 깊이를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던 전통적인 경로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니다. AI는 수많은 논문, 강의자료, 해설까지 제공하며 지식 접근을 평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기업도 대학의 전통적 역할을 흡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팔란티어(Palantir)의 '메리토크라시 펠로십'이다. 이는 고등학교 졸업생을 선발해 4개월간의 유급 실무 훈련과 고전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대학 진학 없이도 전문 경력을 시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참여자는 약 7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이후 정규직 채용 기회도 주어진다. 팔란티어는 이를 "팔란티어 학위"라고 부르며, 기존 대학보다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내세운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직업 교육을 넘어서, 대학의 본질적 기능을 사회가 재(再)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AI 의존과 학생 성과의 역설
AI의 편리함은 학습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역효과도 낳고 있다. 많은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스스로 사고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영국에서 13~18세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 이상이 AI 도구가 학업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60% 이상이 AI 사용으로 인해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력이 떨어졌다고 느꼈다. 일부 학생은 "이젠 AI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교수들도 변화된 과제를 실감하고 있다. 생성형 AI 이후 제출되는 보고서는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AI 없이 직접 글을 쓰게 하면 이전보다 그 수준이 훨씬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과물은 개선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고력과 표현력은 후퇴할 수 있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AI의 부작용은 대학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도 나타난다. 자동화의 확산으로 인해 신입사원들이 초급 업무를 직접 경험하며 기본기를 쌓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며 기업은 즉시 투입 가능한 숙련된 인재를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회초년생이 전문가로 성장할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거꾸로 바라보면, 대학 교육이 졸업생들에게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길러주지 못한 책임이 있다. 결국 대학 교육 자체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제 대학은 AI와의 공존을 거부하기보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닌, 학생들의 사고력, 문제해결력, 윤리적 통찰을 길러주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 실제 사회나 기업, 정부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수업 안으로 끌어들이고,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AI와 함께 해법을 탐색하는 수업이 요구된다. AI는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파트너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한국 대학 교육의 구조는 성적을 기반으로 학생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토론과 탐색 중심의 교육은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현재의 성적 중심 체계와 충돌한다. 이런 제도적 장벽이 새로운 시도를 막고 있다.
또한 학과 간 경직된 경계도 문제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는 기술과 인문, 윤리와 데이터가 얽혀 있어 단일 분야 지식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공계와 인문사회계가 분리되어 교육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기술 교육에는 윤리와 인문학을, 인문교육에는 코딩과 데이터 분석 능력을 결합해 융합형 인재를 길러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AI 시대의 학생들은 다양한 경로로 지식을 습득하고 커리어를 설계하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4년제 직선형 모델은 더 이상 유일한 학습 경로가 아니다. 대학에 대한 정부 규제도 이 흐름에 맞춰 보다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모듈형 수업, 맞춤형 학위, 온라인·오프라인 혼합형 학습 방식 등 개인의 상황과 속도에 맞는 교육과정이 절실하며, 이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어야 한다.
◇ 대학은 인간만의 창의적 사고 키우는 일 맡아야
AI는 대학 교육에 있어 도전이자 기회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은 점점 AI가 대체할 것이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와 성찰을 키우는 역할은 여전히 대학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대학이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느냐다. 사고방식과 제도를 바꾸고,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만들어갈 때, 대학은 여전히 인간 성장의 중심이자 사회 혁신의 출발점으로 남을 수 있다.
홍순만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