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중 2명 이상 "혼전 성관계 허용"
경제만족도 '최저'에도 이타심은 상승
"성공, 능력보다 배경따라 크게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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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화 탈피…개인이 전면에 등장
10일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에 따르면 '아버지의 권위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는 응답은 2006년 84%에서 올해 55%까지 약 29%포인트(P)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가족의 안녕을 우선시해야 한다'(80→43%)거나 '자식은 부모에게 명예가 돼야 한다'(75→38%)는 식의 위계적인 가부장적 가치 역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이루었던 유교 문화와 가부장적 가치관이 급속히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가족을 위한 헌신'보다 '자신의 선택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성역할 인식의 해체가 두드러진다. '아들이 가계를 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20년 사이 57%에서 21%로 36%p 급감했다. 아울러 '아내는 남편의 경력 지원이 중요하다'는 항목도 51%에서 25%로 줄어들었다. 성별에 따른 전통적 역할 구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태도 역시 지난 2008년 50%에서 올해 71%로 증가해 국민 3명 중 2명 이상이 허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일부 영역에선 여전히 전통적 관념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동성 성관계에 대해서는 국민 70%가 부정적으로 인식하며 사회적 수용도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혼외 성관계는 간통죄 폐지(2016년) 이후에도 허용 비율이 10%대에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국민 다수가 비도덕적인 행위로 금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반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치관이 변화하고 있지만, 성소수자나 혼외 성관계와 같은 일부 영역에서는 보수적인 인식이 유지되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인다는 분석이다.
◇경제적 만족도 낮아졌지만…심리적 안정감 중요
아울러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에선 흥미로운 가치관의 공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경제만족도는 조사 기간 중 최저치(25%)를 기록했음에도, 행복감(47%)과 생활만족도(39%)는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
주관적 행복이 단순한 물질적 조건이 아닌 사회적 관계나 심리적 안정감 등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공동체의 연대와 이타심도 정신적 안정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대 간 사회 이동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었는데, '부모세대보다 나은 삶'에 대한 낙관은 저물고, '생활수준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정체된 인식이 확산된다. 여전히 개인의 노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부유한 집안 출신이나 부모의 교육 수준 등 세습적 요인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정부 지출 확대에 대한 인식을 보면, 노인연금과 실업수당과 같은 복지 분야에 대한 지지는 2020년 전에 비해 가장 크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는 경기 침체로 인한 개인 생계 우선의 분위기, 특정 집단에 한정된 수혜라는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한다. 다만 환경(61%)과 보건(53%) 분야에는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높았다.
◇AI 시대…편리하지만, 일자리 불안 여전
최근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 가장 첨예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기계와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이었다. 이번 조사에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담겼는데, 일자리 상실에 대한 불안감과 일상생활에서의 효용성이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드러났다.
국민의 절반 이상(65%)이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걱정한다'고 응답했고,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거나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소수에 그쳤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활용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인식이 나타났다. '내 수술을 로봇이 담당하는 것'(46%)이나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는 것'(45%)에 대해 불편하다는 응답보다 편안하다는 응답이 높았다. 국민들은 기술이 제공하는 효율과 편리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한 사회적 불안에는 여전히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AI가 제공한 정보에 대한 불안감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국민의 과반(53%)이 'AI가 생성한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 불안을 느꼈으며, '인공지능이 제공한 정보인지 사람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항목에서도 불안감이 나타났다.
AI 기술의 확산은 이처럼 노동시장에도 새로운 균열을 만들고 있다. 개인의 삶에 윤택함을 가져다주지만,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불안은 여전히 큰 것이다. 한국 사회는 기술적 진보를 누리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한 숙제를 안고 있다.
한편 KGSS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고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주관하는 장기 사회조사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전국 주요 대학이 함께 참여했다. 2018년까지는 대학생 조사원들이 직접 참여했으며, 2021년부터는 한국갤럽이 격년제로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2003년 시작된 이 조사는 20여년 간 한국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추적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