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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언론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한미관세협상 드라마는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미 양측이 합의한 팩트 시트가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결과가 초래할 영향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상당하다. 특히 향후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관세부과 자체를 무효화하고, 또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할 경우 초래될 또 다른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트럼프가 늘 그랬듯이 지금까지의 합의를 쉽게 뒤집을 가능성도 매우 큰 만큼,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를 갖추어야 한다.
당장 매년 200억 달러씩 10년에 걸쳐 2000억 달러의 현금을 트럼프 정부에 납부하고, 우리가 얻는 가시적인 보상은 자동차 완성차 및 부품에 대한 관세율의 10% 인하다. 2024년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 완성차 및 부품의 총수출액은 429억 달러였다. 올해 들어 대미 자동차 수출이 급감하고 있지만, 여전히 작년 수준으로 수출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번 관세협상 타결로 우리가 면제받는 관세액은 42억9000만 달러다. 이 관세를 면제받기 위하여 200억 달러의 현금을 매년 10년간 트럼프 정부에 헌납하는 협상결과를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매우 기이하게 보고 있다. 우리 국내에서는 미국과의 협상타결 지연으로 곧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극우 보수층의 정치적 압력이 워낙 강력하였기에, 국내 정치적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더욱 낭패한 경우는, 미국 대법원에서 트럼프의 상호관세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트럼프는 지난 1930년대 이래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었던 미국무역법 338조 발동과 같은 임기응변조치로 관세부과를 계속하거나, 혹은 중간선거를 겨냥하여 미국 내 수입업자들에게 관세환급조치 실시 등 다양한 변칙적 대응이 예상된다. 즉 이번 협상타결로 외관상 불확실성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특유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만큼, 불확실성의 시나리오별로 대응 및 협상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신라 금관이나 골프채로 매수할 수 있는 트럼프의 환심의 수명은, 지금까지 경험하였듯이 매우 짧다. 트럼프는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고 느낄 경우, 기존의 모든 국제조약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려 왔다. 따라서 향후 다양한 트럼프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여건을 확보할 수 있는 전략을 면밀하게 갖추어야 한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한미관세협상 결과의 이행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을 관철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트럼프가 미국 국민들에게 약속한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단순히 한국으로부터 매년 200억 달러의 현찰인출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국기업과 미국기업 간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주요산업별로, 또 기업 간 협력형태별로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번 관세협상을 통한 대미투자 약속이 단순히 미국에 매년 200억 달러의 현찰을 뺏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의 미국 및 세계시장에서의 시장지배력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전략적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중장기적 과제는 예측가능한 국제규범에 기반한 국제무역질서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최근까지 트럼프의 막무가내식 변칙적 정책들이 만연한 배경은 트럼프가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 무역질서를 단기간에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측가능한 다자주의 국제무역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공허한 수사학이 아니라, 우리경제의 생존을 위한 실존적 과제이다.
WTO체제의 붕괴에 따른 실질적 피해를 겪고 있는 EU, 일본,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 등 다수 중견국가들은 다자주의 무역질서의 복원을 절박하게 바라고 있다. 따라서 이들 중견국가들과의 전략적 연대를 통하여 예측 가능한 다자주의 무역체제를 복원하는 데에 우리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 이런 다자주의 무역체제의 회복을 위한 중추적 중간국가로서의 우리나라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 기대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우리 정부와 통상당국의 진가를 보일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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