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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극단의 시대, 어느 언론인의 나치식 언어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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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30. 18:06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64회>
유대인을 독충에 비유한 나치의 선전물.
유대인을 독충에 비유하는 1944년 나치의 선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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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홉스봄의 지적대로 20세기는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식량 증산과 인구 폭증을 초래했다. 대규모 세원을 확보해 광범위한 산업 기반을 구축한 현대국가는 강력한 행정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발휘했다. 20세기 전쟁은 대규모의 기계화된 현대전으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1차대전과 2차대전은 1억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합리성과 창의력을 자랑하는 20세기의 지구인들이 어떻게 인종청소와 종족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극단화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선 집단적 광기와 무의식에 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되지만, 우선 인간이 언어적 존재라는 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명징한 언어를 사용하여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습성을 갖기 때문이다.

회색에는 50개 이상의 음영이 펼쳐지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 모든 빛깔을 모두 묶어 회색이라 부른다. 그 순간 회색이라는 단어에 다채로운 모든 빛깔이 다 빨려드는 언어적 착란이 일어난다. 흑인, 백인, 황인 등등 피부색을 기준으로 인류를 몇 개의 인종으로 구분하는 관습 역시 마찬가지다. 백인, 흑인, 황인 등은 피부색만을 기준으로 수십억 인류를 분류하는 편의적 도구에 불과하지만, 그 낱말을 매개로 현실의 인간을 보는 순간, 실체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고정관념과 선입견만이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결국 인종주의(racism)란 언어의 속임수에서 생겨난 정신적 극단화의 미망이다.

언어적 단순화가 정치적 극단주의의 뿌리라는 말이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모순과 불합리다. 비근한 일례를 살펴보자.

지난 11월 5일 표현의 자유와 인권의 존엄성을 지상의 가치로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한평생 기자 명함 뿌리며 살아온 원로 언론인 조갑제가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국 MBC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여 공명선거의 회복을 부르짖는 일군의 사람들을 "역사의 바퀴벌레"라고 단정하며 혐오감을 마구 드러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영 방송의 공공 매체를 통해 동료 인간을 "바퀴벌레" 모독하는 극단론자의 흉측한 언어 폭력이 그대로 방출된 이 사건은 대한민국 정치가 광폭하고 야만적인 "극단의 시대"로 추락할 수 있음을 알리는 불길한 전조일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헌법 정신으로 내세운 나라에서 어떻게 기자라는 자가 공적 매체를 통해 동료 인간을 "바퀴벌레"라 모독하고는 스스로 "센 발언이라고 생각 안 한다"며 도덕적 불감증을 과시할 수 있는가?

공영 방송에 나와 일군의 인간을 "바퀴벌레"라 단정하는 조갑제의 무지몽매한 폭언을 묵과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언어가 실은 600만 이상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던 1930~1940년대 나치의 언어를 그대로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치에 열광했던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병균을 옮기는 쥐, 이, 독충, 기생충이라 부르면서 모독했다. 1940년 제작된 나치의 선전영화 '영원한 유대인(Der ewige Jude)'을 보면 유대인의 이미지가 하수구에 버글대는 쥐 떼와 교차하는 장면이 있다. 나치의 음험한 삽화에선 유대인이 유럽의 지도 위로 몰려다니는 바퀴벌레 등으로 묘사됐다. 1940년에 출판된 아동용 동물우화를 보면, 유대인은 기생충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1940~1944년 폴란드에 널리 나붙었던 나치 포스터에는 병균을 옮기는 유대인 랍비의 그림 위에 "티푸스균을 조심하라! 유대인을 피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페스트 병균을 옮기는 쥐 떼들을 모조리 박멸해야 하듯 유대인을 인종적으로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인종 청소의 선전·선동이었다. 나치 선전대는 그렇게 공적 매체를 통해 날마다 유대인이 "독충", "해충", "기생충"이라 부르짖고 있었다.

유대인을 더러운 쥐 떼라 모독하는 나치 시대 독일의 언어 폭력은 머잖아 홀로코스트의 광기로 표출됐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집행인들은 실제로 유대인을 게르만 순혈주의를 오염시키는 병균이라 여겼다. 바로 그런 인식 위에서 그들은 병균을 소독하듯 유대인 모두를 완전 박멸하기 위해서 빈데, 이, 바퀴벌레 등을 잡는 살충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7년 전 유럽 출장을 갔을 때 나는 베를린에서 밤차를 타고 폴란드 크라쿠프(Krakow)까지 10시간 넘게 달려 아우슈비츠 박물관을 방문했다. 나치가 살충제를 써서 유대인을 학살한 그 현장에서 나는 말을 잃고서 날마다 무수한 사람의 영혼이 빠져나간 그 가스실 내부를 망연자실 지켜보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까지 끌려간 유대인 대다수는 바로 당일 가스실에서 질식사했다. 겁에 질린 유대인 포로들이 가스실에 들어가면, 나치 간수들은 신속하게 철문을 잠갔다. 1번 벙커에는 800명씩, 2번 벙커에는 1200명씩 수용되었다. "크릉" 소리를 내며 철문이 잠기는 순간, 벙커에 갇힌 포로들은 비로소 흐느끼기 시작했다. 곧 측면 구멍으로 1920년대 개발된 살충제 치클론(Zyklon) B가 살포되었다. 치클론 B가 퍼져나가면 포로들은 20분 이내에 거의 다 목숨을 잃었다.

1920~1930년대 이 살충제는 농약으로 널리 사용됐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흔적 없이 해충만 박멸하는 장점 때문이었다. 나치는 처음부터 이 약품을 홀로코스트에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2차 대전 초기엔 굶겨 죽이거나 태워 죽이거나 총살하기도 했고, 일산화탄소 및 진정제 등도 사용했으며, 콜레라 및 티푸스균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후 아우슈비츠 사령관 루돌프 헤스(Rudolf Hess, 1894~1987)가 학살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치클론 B를 도입했다. 이 맹독성의 화학약품은 끓는점이 낮아 (섭씨 26도) 쉽게 기화(氣化)되고 공기보다 가벼워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1940년대 나치 선전 포스터
1940년대 나치 선전 포스터. "쥐다, 모두 잡아 죽여라!"(왼쪽). "티푸스균을 조심하라! 유대인을 피하라!" (오른쪽)
치클론 B는 본래 해충을 죽이는 농업용 살충제였다. 나치의 반유대인 선전은 의학적, 위생학적 지식을 오용한 유사 과학의 언어로 이뤄졌다. 나치는 "해충박멸"을 위해 농작물에 농약을 살포하듯, "인종 위생"을 위해 인류의 기생충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에 살충제 '치클론 B'가 사용된 이유가 그것이었다.

현실은 복잡한데 언어는 단순하다. 단순한 언어로 복잡한 현실을 단정하는 순간 인간은 언어적 극단론에 빠져들고 만다. 문화
대혁명 때 중국의 홍위병들은 부모나 조부모를 잘못 만나 계급 천민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독충(毒蟲), 해충(害蟲), 기생충(寄生蟲), 우귀(牛鬼, 소귀신), 사신(蛇神, 뱀귀신)이라 모독했다. 홍위병의 욕설은 단순한 언어적 폭력에 그치지 않고 1772명을 때려죽이는 1966년 홍팔월(紅八月)의 광란극으로 표출됐다.

방송 출연한 원로 언론인이 공명선거 관련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싸잡아 "바퀴벌레"라 모독하며 혐오감을 드러내는데, 공영 방송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그 거칠고 음험하고 일방적인 폭력적 망언을 고의로 여과 없이 그대로 송출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진정 나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을 버러지라 단정하는 무책임한 폭언이 극단적 폭력을 교사(敎唆)하는 악행임을 진정 모르는가?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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