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전통 연구해서 과학으로 매뉴얼화 추진
현대 정신의학 한계 드러나...극복할 연구 필요
"정신질환 개인 아닌 사회 문제, 정책 지원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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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정신질환 치유를 위해 사용된 명상 프로그램이 핵심이 빠진 '약효 떨어진 약'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제대로 된 처방제를 만드려는 시도다. 이 프로젝트는 인문학자와 정신과 의사가 의기투합하면서 시작됐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인 강성용 교수와 네브래스카 메디컬센터 대학(UNMC) 정신의학과 황순조 교수다.
강 교수는 1991년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 1998년 독일 함부르크대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2003년 같은 대학교에서 고전인도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2019년부터 현재의 직위를 맡고 있다. 황 교수는 1999년 연세대 의학과 졸업, 2004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전공의 수련, 2010년 뉴욕의대, 2012년 하버드의대를 거쳐 2015년 네브래스카 메디컬센터 대학(UNMC)에서 아동·청소년 정신과 의사이자 교수로 활동 중이다.
본격적인 공동연구에 앞서 두 교수는 지난달 24일 서울대 아사아연구소에서 '인도전통은 현대의 정신건강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란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워크숍 시작 전 두 교수를 만나 이들의 연구가 갖는 의미를 물었다.
◇'인류의 문화자산' 인도 수행전통과 정신의학 만나다
강 교수는 인도 수행전통을 '인류의 문화자산'이라며 땅속에 묻힌 황금에 비유했다. 정신적·육체적 치료법 중 하나로 쓰이는 명상 요법 대부분은 인도 수행전통에서 파생됐다.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인도 수행전통의 영향력 안에 있었던 셈이다.
강 교수는 "인도 고대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 우주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개념이 받아들여지면서 '내 몸 안'에 제사를 지내는 개념이 발생했고, 혼자 조용히 명상하는 전통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며 "이러한 인도 수행전통이 최근 주목받는 것은 행복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다고 믿고, 동시에 사회가 아닌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인도 수행전통을 문화나 미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류가 축적한 연구 성과로 접근해야 한다"며 "인간의 행동·충동은 2000년 전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강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서 직접 정신과 환자들을 만나며,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 지 보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장비로 다양한 임상 실험을 하고 있다.
황 교수에 따르면 현대 의학의 발전 속도에 비해 정신의학의 발전은 더딘 편이다. 세균·바이러스에 대한 성능 좋은 약들이 나오고 위생법·식이요법·운동처방·수술 방법 등 다양한 처방이 개발되고 있다. 이에 비해 정신질환에 쓸 수 있는 도구는 약·상담·기초적인 명상 프로그램 등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심지어 대중화된 명상 프로그램을 검증해보니 우울증 약 정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컴퓨터 게임 수준'의 효과밖에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새로운 방법론에 목말라했던 황 교수는 강 교수의 연구를 통해 현대 정신의학이 놓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명상이 정신질환에 효과가 있는 건 검증된 사실이다. 문제는 명상이라는 '약초'에서 성분을 제대로 추출해서 상황에 맞게 처방하는 것"이라며 "기존 명상 요법에는 '왜 하는가'라는 목적 의식과 명상에 전제되는 사유 과정이 빠졌기 때문에 큰 효과가 없었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그간 의료 현장에서 사용된 명상 요법은 마치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하는 선수에게 마구잡이로 운동을 시킨 것과 같았다. 운동을 안 하는 것보다는 효과적이나, 바르지 않은 자세로 부적절한 운동을 할 때 심각한 부상이 발생하는 것처럼 명상 프로그램 수행 후 망상이나 환청 등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도 있었다.
황 교수는 인도 경전 등에서 잘못된 수행을 했을 때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을 상세히 기록한 것을 언급하며 "고대인들은 육체 훈련만큼 정신 영역에서도 체계적인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편적이고 안전한 매뉴얼이 개발돼야 명상이라는 유용한 도구가 인류의 문화자산으로 훌륭하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학계도 정신의학과 수행전통을 같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수행전통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과학·의료계와 학문적으로 교류할 자리가 부족했다. 이를 장려할 정책이 필요하고 이러한 연구를 뒷받침할 예산 집행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신건강, 사회적 안정과 연결...최적의 장소 한국
개인의 정신질환을 치유하고자 하는 연구에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할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두 교수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했다.
황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보편적이 대중적인 현상이 됐다"며 "정신건강을 전적으로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일로 보는 인식에서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감염병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전 세계에서 불고 있는 정치적 극단주의를 예방하는 데도 이번 연구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문제는 100명 중 약 극단의 20명의 목소리를 사회가 제어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며 "100명 중 40명 이상만 감정 컨트롤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회 전체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인도 수행전통을 과학적으로 검증된 정신적 매뉴얼로 쓸 수 있다면 기존보다 더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충분히 사회적으로 연구하고 투자할 만하다"고 했다.
두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공동연구의 표본 군으로 한국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들이 보는 한국은 최첨단 기술을 지닌 선진국이면서 동북아시아의 전통이 고스란히 보존된 희귀한 곳이다.
강 교수는 "서울 강남구 봉은사만 해도 가장 고층 빌딩들이 있는 중심지면서 생전예수재·선방(禪房) 안거 등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동남아 불교·티베트 불교 수행, 요가, 현대 명상 프로그램 등 다양한 수행법들이 들어와서 행해지고 있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우리의 연구에 가장 적합한 표본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이러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우리가 보기에 한국은 '정신적인 희토류'를 캘 수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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