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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퍼즐 조각은 다양하다. 권력, 민심, 법률, 조직, 지역, 자본, 언론, 인물 등의 퍼즐 조각은 모두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정치의 퍼즐들을 큰 카테고리로 묶은 게 바로 국가 운영의 핵심인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이다. 이 세 가지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퍼즐이 바로 '지방 권력'이다. 정치가 늘 중앙을 지향하는 것 같지만 그 힘의 근원은 바로 '풀뿌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윤석열 정부는 퍼즐 게임에 실패했다. 윤 정부는 출범 당시에는 강력한 행정권을 기반으로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가 분명해졌다.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이라는 세 개의 퍼즐이 맞물려 균형을 이루는 상태인 정립(鼎立)이 돼야 비로소 권력은 안정되고, 국정은 제대로 굴러간다. 퍼즐의 세 조각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따로 놀면서 정책은 완주하지 못했고, 개혁은 제도화되지 못했으며, 국정 동력은 서서히 상실됐다. 윤 전(前)대통령이 구조적 좌절 속에 비상계엄이라는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달랐다. 단순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아니고 퍼즐을 대하는 태도부터 차이가 있다. 민주당의 방식은 단기적 힘의 과시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를 장악하는 장기(長期) 설계에 가깝다. 눈앞의 통치력 장악에 몰두하기보다는 몇 년 뒤의 정치 지형을 계산하며 퍼즐 조각을 옮기는 식이다. 이런 과정이 때로는 볼썽사납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저런 비난과 비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일례로 사법권 장악을 살펴보자. 민주당은 제도와 법률을 통해 서서히 사법권을 '직접 장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동안 집요하게 추진해 온 검찰개혁,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은 단순 정책이 아니라 사법 구조에 대한 장기적 재설계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제도를 변경해서 장기적으로 내 방식을 고수하며 내 편 사람으로 조직을 채우는 식이다. 법 왜곡죄 신설과 법원행정처 폐지 등도 왜곡된 사법 시스템을 고치겠다는 명분으로 결국 조직을 직접 장악하겠다는 포석을 담고 있다. 법적·제도적으로 사법부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삼권분립을 해치는 위헌 비난이 빗발쳐도 압도적 입법권을 무기로 일축하며 강수로 일관한다.
행정권 장악도 마찬가지다. 즉흥적이거나 단순한 인사 교체 방식보다는 근본적이고 철저하며 자기중심적인 장기 포석을 고려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헌법 존중 정부혁신 TF'라는 조직이다. 실체는 공무원 중 계엄 동조 세력을 걸러내기 위한 TF지만 '헌법 존중'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행정권의 인적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장악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TF 이름에 따르면, 이에 대한 반발은 '헌법 부정'이 되며, 이는 곧 내란 동조 세력이라는 의미가 된다. 행정권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이 자연히 민주당으로 넘어올 수밖에 없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거나 포섭한 조직은 수명이 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브레이크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장악해 왔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속수무책일 정도로 가차 없이 진행됐다. 이제 남은 것은 지방 권력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 17곳 중 국민의힘이 과반인 12곳을, 민주당은 5곳만을 챙겼다. 민주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역전을 노리고 있다. 마지막 퍼즐 완성이 눈앞인데 마다할 리가 없다. 요즘 서울시장 등 국민의힘 광역단체장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가 부쩍 거세지는 이유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소속 광역단체장들은 최근 "내년 지방선거 패배가 곧 이재명 정권의 '독재' 시작"이라는 위기의식을 내비쳤다.
민주당의 퍼즐 맞추기가 단기가 아닌 장기 집권의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8년부터다. 당시 당대표였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수석부의장의 '민주당 20년 집권론'이 그 단초였다. 그의 발언은 당시 큰 논란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민주당 내부에 '장기 비전'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도 사실이다. 전국 조직 강화와 지역 기반 확대 등의 전략을 제시했던 이 수석부의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국내 자문위원 2만3000여 명, 청년 자문위원 6000여 명, 해외 자문위원 4000여 명을 거느린 거대조직 평통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노회한 이 수석부의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방 권력 장악'에 지대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의 퍼즐 맞추기는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그 퍼즐 맞추기도 예외 없이 강력하고, 집요한 풍경을 연출할 것이 분명하다. 유약한 국민의힘이 이를 막을 방법이라고는 민심 의존 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여전히 계엄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민심도 호락호락하게 손을 들어줄 거 같지는 않다. 어쩌면 보수 진영은 아주 오랫동안 진보 진영에 자리를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 20년 집권론이 허구가 아니고 현실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최범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