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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고환율에 기름 붓는 초확장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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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21. 17:52

원화가치 내리고 해외 수입 수요 자극
고물가→ 고금리로 경기 부양 무력화
통화정책과 충돌, 국가 신용위험 높여
대통령이 재정건전성 유념 신호 줘야
배병우 논설위원
배병우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예산인 2017년 예산 규모는 400조5000억원. 이 400조 예산이 600조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딱 5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이룬 '위업'이다. 연평균 증가율이 8.7%에 이른다. 이 5년간(2018~202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3.9%에서 45.9%로 12%포인트나 점프했다. 코로나 팬데믹 대응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업적보다 과오가 많이 떠오르는 이분이 나랏돈은 원도 한도 없이 쓰고 갔구나 하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임기 3년간 예산은 638조7000억원에서 673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연 평균 증가율은 1.77%다.

이재명 대통령 정부의 첫 예산인 2026년 예산 규모는 728조원이다. 올해보다 8.1% 뛰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재정기조로 되돌아갔다. 당국자들은 '확장 재정'이라고 얘기하지만 단순한 확장 정도가 아니다. 총지출 증가율 8.1%는 내년 실질성장률 전망치(1.8%)의 4.5배에 달한다. 예산 편성 시 핵심 기준으로 삼는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전망치(3.5%)와 비교해도 2.3배다. 초(超)확장재정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내후년 예산 역시 확장 정책으로 편성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 씀씀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재정준칙)도 없고 국회도 장악했으니 이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임기 내내 초확장 기조로 갈 수 있다.

경제에 대한 구조혁신 없이 돈만 풀면 된다는 식의 재정 투입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역대 정부나 일본의 사례에서 여러 차례 입증됐다. 그렇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새 국제경제·무역환경에서 초확장재정 정책의 실효성은 더 낮아지고 부작용은 더 커질 수 있다. 대미 관세협상 타결 후 거시경제 지표 관리에서 최대 난관은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급등)와 해외로의 자본 유출 압력이다. 정부의 전방위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147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는 기업과 가계의 '기대'가 바뀌면서 고환율이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인 양상이 됐음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확장 재정은 총수요를 자극해 가계와 기업의 해외 수입 수요를 크게 늘릴 것이다. 이는 달러 수요 확대→원화 약세 가속→수입 물가 상승→인플레 압력 고조로 이어진다. 시중 유동성이 증가해 가계와 기업의 원화 약세 기대가 더 강해질 공산도 크다. 고환율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물론 국내 소득 증대 효과도 일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재정승수보다 환율승수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보다 환율의 변화가 GDP에 더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환율 상승이 초래하는 역효과가 확장 재정의 소득 증대 효과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충돌도 심각해질 것이다. 한국은행은 고환율 기조가 더 심해짐에 따라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이 경우 민간 투자위축, 가계 대출 금리 상승, 기업 금융비용 증가로 확장 재정 효과는 무효가 된다. 또 빚을 내 지출을 하다 보니 내년에도 110조원이 넘는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시장에 풀린 국채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시장금리가 올라(채권 가격은 하락) 통화정책 당국의 딜레마는 더 심해진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 한국형 국부펀드, 한미 투자펀드 등의 재원 일부를 정부 보증 채권으로 충당할 경우 시장금리는 더욱 상향 압력을 받을 것이다.

외국인의 시각도 유의해야 한다. '고환율 체제+초확장재정'의 조합은 원화 가치 폭락 위험과 한국의 재정건전성, 국가 신용등급 적절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한 계획이 없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거듭되는 지적을 허투루 들을 게 아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예산이 이미 통과했지만, 경기부양에만 올인할 게 아니라 환율·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예산 집행 속도를 조절하고 환율에 불리한 지출은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에 유념하고 있다는 신호를 이 대통령이 보내는 것이 절실하다. 국내외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서다. 최소한, 내후년 이후부터는 경상성장률 전망치 범위 내에서 예산 증가율을 관리하겠다는 약속 정도는 해야 한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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