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주연 배우에 의존하는 구조 개선 필요
"제도·장치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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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우 조진웅의 과거 범죄 이력이 다시 거론되며 tvN 차기작 '두번째 시그널'의 제작 일정과 공개 여부가 불투명해진 일은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서 어떻게 표면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수백억 원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개인의 이슈 하나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두번째 시그널' 제작진은 "작품과 시청자를 위한 최적의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tvN은 해당 작품이 10년을 기다려온 시청자들을 향한 의미를 담아 2026년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준비돼 왔다며, 현재 상황에 대해 제작진 역시 시청자들의 실망과 우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획 단계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 관계자들이 참여한 작품인 만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드라마가 지닌 가치를 지키는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사례는 특정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환경 변화와 맞물린 구조적 징후로 읽힌다. OTT 시장 확대 이후 한국 드라마 산업은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팽창을 겪었다. 제작비는 빠르게 불어났고 이에 따라 배우 출연료와 창작 인력의 몸값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드라마 한 편당 제작비가 세 배 이상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작 규모의 확장은 곧 리스크의 확장으로 이어졌지만 이를 관리하는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비가 커질수록 작품은 안정적으로 가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변수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며 "주연 배우 한 명의 이슈가 전체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제작 방식 자체를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비해 책임을 규정하는 기준과 관리 구조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작 현장은 여전히 소수의 주연 배우에게 의존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개인적 논란이 발생할 경우 작품 전체가 중단되거나 공개가 무산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제작비가 커질수록 한 번의 변수로 발생하는 손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제작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드라마는 집단 창작물이지만 대중과 직접 만나는 얼굴은 결국 배우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홍보와 이미지 등 배우에게 집중되는 구조 속에서 제작사가 특정 배우에게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 자연스러움이 리스크 관리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고민 지점으로 남는다.
출연 계약서를 통해 위험을 관리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서상 권리와 의무는 명시돼 있으나 협상 과정에서 제작사가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배우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항을 명확히 담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는 점은 업계 전반에서 공유되는 인식이다.
'사회적 물의 발생 시 위약금 부담' 조항이 포함돼 있더라도 적용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사회적 물의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피해 규모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 투입된 제작비뿐 아니라 향후 발생 가능한 수익과 후속 사업 손실까지 포함해 계산하는 문제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제작비가 커질수록 리스크도 함께 커지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흡수하고 조정할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배우 개인의 과거 이력이나 잠재적 변수를 사전에 모두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 결과 제작 현장은 배우 개인의 판단과 매니지먼트의 관리 역량에 상당 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남아 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K-콘텐츠는 이미 성장의 당위성을 설명해야 하는 단계는 지났다"며 "이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가 아니라 어떤 구조로 감당할 것인지를 묻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작비와 영향력이 커진 만큼, 리스크를 개인의 변수로만 남겨두는 방식은 산업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을 수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커진 규모에 걸맞은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배우의 사생활 리스크가 작품 전체로 확산되는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지만 제작비와 영향력이 커졌음에도 리스크를 흡수하고 조정할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박송아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안은 사전 검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단계에서 논란 발생 시 대응 시나리오를 명시하고 제작·편집·공개 과정에서 중단이 아닌 조정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이라며 "이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작품과 창작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기준과 관리 체계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