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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은 이제 옛말”…부동산 개발업체·신탁사, PF 시장 전반 ‘생존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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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빈 기자

승인 : 2025. 12. 28. 16:20

‘고위험·저자본’ PF 모델 “붕괴”…개발·신탁업 수익성 ‘뚝’
자기자본 규제 강화 등에 중소 업체들 우려 ‘확산’
“필연적 구조 전환”…PF 선진화 과정 ‘진통 불가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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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거나 가치평가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토지에 아파트, 업무·상업·문화시설 등을 결합해 새로운 부동산 가치를 창출해 온 국내 개발사업 업황이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은 자기자본에 낙관적인 사업성 전망을 전제로 고위험·고수익 구조를 감내하던 과거식 개발 모델이 더 이상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어서다. 2022년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장기화 속에서, 소규모 자기자본에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활용해 사업을 확장해 온 관행이 부동산 시장은 물론 금융권 전반의 리스크로 부상하자 정부가 강도 높은 규제에 나서면서부터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PF 구조 개편이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개발 및 금융 구조의 고도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대수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개발업체와 신탁사를 중심으로 한 업계 전반의 '고사 위기' 역시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건설·부동산 산업이 국내 경제의 주춧돌인 만큼, 규제 충격으로 다수 개발사와 신탁사가 시장에서 자리를 잃을 경우 향후 공급 기반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다.

28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 개발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개발시장 규모는 지난해 소폭 감소한 이후 올해와 내년에는 연평균 5% 안팎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도 부동산서비스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부동산 개발업 전체 매출액은 107조600억원으로, 전년(118조7800억원) 대비 약 9.8% 감소했다.

다만 올해 시장 규모는 약 110조원 수준으로 소폭 반등하고, 내년에도 115조원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국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거시설을 결합한 대형 복합개발 수요가 여전히 견조하고 서울의 공급 부족 우려가 이어지면서 시장 외형은 점진적인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는다.

그러나 시장의 외형이 확대되더라도, 이를 지탱해 온 개발업체와 부동산 신탁사의 체력은 오히려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특히 신탁사들은 영업을 지속할수록 적자 폭이 확대되는 구조에 놓이며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14개 부동산 신탁사의 누적 영업적자는 1529억원에 달한다. 작년 3분기 누적 적자(1949억원)와 비교하면 21%(420억원) 줄었지만, 업황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부담은 여전히 크다.

신탁업계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은 대손 인식 부담이다. 부동산 호황기 고수익을 노리고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 개발신탁(책준형)과 차입형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한 결과가 경기 침체 국면에서 대규모 손실로 되돌아 온 것이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신탁사가 금융비용 등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높은 수수료로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지만, 시장 급변 속에 부실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부동산 개발업체 간 양극화 심화도 뚜렷하다. 정부가 PF 구조 전반에 '메스'를 대면서, 대형 개발사를 제외한 중소 개발업체들이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최근 PF 사업의 자기자본 비중을 높여야 대출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PF 건전성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현재 평균 3% 수준인 PF 자기자본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자기자본비율 5%→10%→15%→20%로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비율에 따라 대출 규제를 차등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당국의 취지에는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이 깔려 있지만,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자기자본비율이라는 단일 지표로 PF 사업을 평가할 경우 사업성이 양호한 프로젝트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개발업체 임원은 "결국 대형 개발사만 생존하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고, 주택 공급과 개발사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이 같은 위기를 단순한 경기 위기 때문이 아닌, 산업 구조의 전환 신호라고 봐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박선제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장은 "건설산업은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으며, 인구 감소와 재정 여력 축소 등 비우호적 환경을 고려하면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어렵다"며 "향후 건설투자는 연평균 0~1% 수준의 저성장이 불가피한 만큼,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개발업계를 대표하는 한국디벨로퍼협회도 구조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보다 정교한 제도 설계를 주문한다. 협회는 자기자본을 단순 투입 비용이 아닌 지분 가치로 평가해, 인허가 완료 등 사업 리스크 해소 단계에서 토지가치 상승분을 반영하는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동일 시행사가 참여한 복수 PF 사업을 일괄 합산하는 거액신용공여 규제가 PF의 핵심 원칙인 '사업과 주체의 분리'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건전성 강화 기조가 금융권에서 과도하게 먼저 반영될 경우 양호한 사업장까지 신용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 정책의 목표가 시장 축소가 아닌 PF 선진화라는 점이 명확히 전달돼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주택·부동산 공급을 위해 공급정책과 금융정책의 균형 속에서 민관 간 소통이 지속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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